방사청, 석연찮은 부당이득 환수처분…96억 날벼락 맞은 중소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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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아침에 ‘96억 날벼락’을 맞고 직원들이 거리에 내몰릴 위기입니다.”

방사청 “감사원 감사 결과 따라 한 것”
감사원 “의혹 확인하라는 취지였다”
두 기관 책임공방 속 기업 폐업 위기

중소기업 ‘디에스티’의 대표 황모(63)씨는 19일 이같이 말했다.

사연은 이랬다. 그는 지난달 14일 방위사업청(방사청)으로부터 문건 하나를 받았다. 거기엔 납품 물품에 대한 특별 원가검증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업체는 철도차량, 군용 전차 등을 생산하는 현대로템에 제독장치(독성물질 중화 장치)와 전원 공급장치를 납품하는 하도급 업체다. 지난 2001년 설립돼 연 매출은 지난해 기준 91억원 규모다.

황씨는 재료비와 인건비, 매출 등의 자료는 현대로템에 제출했지만 특별 노무비 내역을 제출하라는 방사청의 요구에는 불응했다. 방사청은 지난 5년간 특정 제품 생산을 위해 투입된 개별 근로자의 근로시간, 대기·휴식시간, 출장 기간 등을 하루 단위로 기록한 자료를 요구했다. 그러나 전담 노무사가 있는 대기업과 달리 유사 중소기업 중 이런 자료를 갖고 있는 업체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자 방사청은 지난달 현대로템에 112억원(부당이득금 56억원+과징금 56억원)을 환수 처분한다고 통보했다. 이 중 96억원을 디에스티와 관련된 금액으로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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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청의 석연치 않은 환수 처분으로 중소기업이 폐업 위기에 몰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감사 결과와 환수처분을 놓고 방사청과 감사원의 입장도 엇갈리고 있다. 방사청은 “환수처분 통보는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근거로 한 것”이라고 전했다. 감사원은 지난 2월 “디에스티 등에 29억~48억원의 부당이득금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납품 물품에 대한 원가 검증이 필요하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감사원 관계자는 “부당이득금은 퇴직 직원 인터뷰나 일부 공정 측정 등으로 낸 추정치”라며 “의혹을 확인하란 취지였지 환수처분부터 내리라는 건 아니었다”고 말했다. 반면 방사청 관계자는 “감사 결과에 따라 처분을 했는데 책임을 떠넘기려 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행 법률상 방사청이 주 계약업체가 아닌 하도급업체에 원가 검증을 요구하거나 환수 처분을 내릴 수는 없다. 이를 가능케 하는 ‘방위사업계약 공정화를 위한 법률(정부안)’이 2013년 발의됐지만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기업의 영업비밀인 원가 공개 문제와 중소 하도급 업체 보호 등과 관련해 논란이 되면서다. 이에 대해 방사청 관계자는 “환수처분은 현대로템에 통보해 법적 문제가 없다”며 “나머지는 현대로템과 디에스티가 알아서 해결할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자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성영훈)가 나섰다. 권익위는 지난 16일 방사청이 디에스티에 대한 특별 원가검증 실시 결정을 취소하고, 현대로템에 대한 부당이득금 환수처분 결정을 취소할 것을 권고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환수처분 통보는 사실상 디에스티를 겨냥하고 있는데 관련이 없다는 주장은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 소장(전 국민권익위원회 국방분야 조사관)은 “하도급업체에 대한 원가검증의 법적권한과 절차를 제대로 따지지 않고 감사원의 추정치를 토대로 연매출을 뛰어넘는 부당이득금 환수처분을 내린 건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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