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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딜라일라, 왈칭 마틸다, 임을 위한 행진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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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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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런던특파원

“마이 마이 마~이 딜라일라, 와이 와이 와~이 딜라일라.”

후련하게 부를 수 있는 후렴구의 팝송 ‘딜라일라’다. 영국, 그중에서도 웨일스 출신 톰 존스(76)의 노래다. 웨일스인들에겐 사실상 국가(國歌)다. 럭비 국가대표 경기라도 열리면 경기장이 떠나가라 부르곤 한다. 2012년 엘리자베스 2세 즉위 60주년 행사에선 영국인들이 ‘떼창’을 했었다.

그런데 노랫말이 거시기하다. 삼손과 데릴라에서 영감을 얻었다는데 거칠게 요약하면 ‘데이트 살해’다. 사랑한 여인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는 걸 알고 칼을 휘두른다는 내용이다. 일부 인사들은 이 때문에 국가로 부적절하다고 주장하곤 한다.

딜라일라의 폭력성이 이슈라면 호주의 비공식 국가인 ‘왈칭 마틸다(Waltzing Matilda)’에선 부정적 또는 비관적 가치관 문제가 도드라진다. 제목에서 춤추는 여인을 상상하겠지만 걸을 때 봇짐이 들썩이는 모양새를 가리킨다. 한 떠돌이가 강가에서 양을 발견, 봇짐 안에 넣었다가(실은 훔쳤다가) 주인과 경찰쯤 되는 이들로부터 추궁당하자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한다는 거다. 19세기 말 식민지 하층민의 곤궁한 삶이 소재다.

역사학자인 도널드 서순은 “특정한 공연자가 어떻게 수퍼스타가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유럽문화사』)고 썼다. 공연자를 노래로, 수퍼스타를 국가로 바꿔도 과히 그르지 않다. 어떤 불가사의한 힘이 작용하곤 한다. 하룻밤 영감에 사로잡힌 왕당파 군인이 휘갈겨 쓴 ‘더러운 피로 밭고랑을 적시겠다’는 노래가 혁명가요가 되고 결국 프랑스 국가(라 마르세예즈)가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과정 자체가 신화다. 일단 그 반열에 오르면 그 반열이란 게 중요할 뿐 나머지는 부차적이다. 라 마르세예즈를 부를 때 왕당파 군인을 떠올리지도 아예 그의 존재를 모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박승춘 보훈처장 등 권력 일부가 마뜩잖아 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이 노래를 운동권 가요의 대표로 만든 힘을 부인할 순 없다. 민심 말이다. 권력이 민심의 물길을 조금 돌려놓을 순 있으나 거스르려는 건 가능하지도 현명하지도 않은 일이다. 힘이 바닥나 가는데 헛심 쓰는 격이다. 게다가 그 방식이 거칠고 촌스럽기까지 하다.

안타까운 건 이런 게 국정 전반에서 반복·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거다. 누군가 “양아치도 그리 안 한다”고 했다. 맞다. 양아치도 힘쓸 때를 알고 눈치도 본다.

고정애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