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 ‘형제의 키스’처럼…오두산 벽화는 한국판 ‘이스트 사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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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오디세이 2016 오두산 벽화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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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박근혜 대통령이 베를린 장벽 동쪽 에 조성된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를 찾았다. [중앙포토]

동·서베를린 경계에 쌓은 콘크리트 담장인 베를린 장벽(Berlin Wall). 그리고 허가받은 군인·외교관 등 고위 인사들이 동·서독을 오갈 때 유일한 관문이던 프리드리히 거리의 찰리 검문소(Checkpoint Charlie). 이 둘은 동·서독 분단을 보여주는 냉전의 상징물이었다. 하지만 독일 통일 이후엔 분단 극복의지를 담은 문화시설로 탈바꿈했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베를린 장벽의 동쪽 일부에는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가 조성됐고, 찰리 검문소는 자유와 평화를 상징하는 거리로 자리했다.

오두산 통일전망대에 이산가족 상봉 염원을 담은 예술작품을 설치하는 프로젝트 ‘꿈에 그린 북녘’은 한국판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인 셈이다.

이 갤러리는 세계에서 가장 길고(1.3㎞) 오래된 야외 미술전시관으로 알려져 있다. 동·서독 정부가 통일을 논의하던 1990년 봄 세계 21개국 미술가들의 100여 개 작품으로 세워졌다. 대표 작품은 러시아 화가 드미트리 브루벨(Dmitry Vrubel)이 그린 ‘형제의 키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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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작품 ‘형제의 키스’는 소련 서기장 브레즈네프와 동독 서기장 호네커의 입맞춤을 해학적으로 담았다. [중앙포토]

동독 서기장 에리히 호네커와 소련 서기장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의 입맞춤을 묘사하고 있다. ‘주여, 이 치명적인 사랑을 이겨내고 살아남게 도와주소서’라는 부제를 가진 이 작품은 자유와 평화를 소망했던 동독 사람들의 정서를 해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평가다. 통일독일의 극적인 역사를 담은 갤러리 작품들은 ▶분단의 아픔 ▶자유와 평화 ▶미래와 희망의 메시지를 장벽에 표현하고 있다. 어두운 벽이 분단 극복의 메시지를 가진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동·서베를린을 오가던 관문이었던 체크포인트 찰리도 자유와 평화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검문소는 냉전시대를 다룬 소설이나 영화에 자주 등장해 유명해졌으며 자유를 갈구한 동독 주민들이 수차례 탈출을 시도했던 장소다.

특히 62년 8월 동베를린을 탈출하려던 동독 청년 페터 페흐터(Peter Fechter)가 벽에 매달린 채 동독 군인의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의 현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분단된 독일의 암울한 현실과 아픔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청년이 숨을 거둔 자리에는 “그는 단지 자유를 원했다(er wollte nur die Freiheit)”고 새겨진 기념비가 자리 잡고 있다.

현재 프리드리히 거리에는 검문소를 재현한 건물이 들어서 있으며 그 옆에 장벽 박물관(Museum Haus am Checkpoint Charlie)이 있다. 박물관은 베를린 장벽의 역사(1961~89년)를 중심으로 자유와 평화를 모티브로 하는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는 “통일운동이 이제는 정치적 운동에서 문화적 운동으로 전환돼야 한다”며 “소녀상이 위안부 문제를 상징하듯 남북 사이에도 소통할 수 있는 공동의 상징물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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