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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인성 기자의 교육카페] ‘학종’이 신뢰받으려면, 더 많은 교사의 땀방울이 필요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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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서울 일반고의 어느 진학교사께서 e메일을 주셨습니다. “대입 학생부종합전형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분위기 속에서 ‘균형 잡힌’ 글을 써 고맙다”는 내용이었죠. 그분은 이곳 ‘교육카페’에 게재된 ‘오락가락 입시제도’(4월 7일자 22면)와 ‘입시용 학생부 쓰는 시대’(5월 5일자 18면) 등 두 글을 언급했어요. ‘오락가락…’은 학생부종합전형 등 대입 수시 모집의 비율을 대폭 줄이자는 총선 공약의 문제점을 지적했죠. ‘입시용…’은 학생부 일부 항목을 비공개로 바꿔 사교육 개입과 교사 부담을 줄이자는 제안을 소개했고요.

예상 못한 칭찬엔 물론 감사했지만 실은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분은 저를 학생부종합전형을 옹호하는 ‘아군’으로 여긴 듯한데, 두 글과 별개로 교사들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었거든요.

요즘 교육계에선 ‘학종 논쟁’이 한창입니다. 대학들이 학생부종합전형을 확대하자 “사교육을 유발하는 금수저 전형” “공정성이 의심되는 깜깜이 전형” 등으로 비판하는 분들이 늘었죠. 이에 맞서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하는 착한 대입”으로 평가하면서 유지·발전을 주장하는 분들도 있고요. 학력고사와 수능 같은 단순한 전형이 낫다고 보는 학부모는 대개 전자 쪽에, ‘한 줄 세우기’ 대입이 초래한 교실 붕괴를 겪었던 일반고 교사들은 주로 후자에 공감하곤 합니다.

e메일을 보낸 분께 전하고 싶었던 일화는 한 입시업체 전문가의 경험담입니다. 지난해 강북의 한 일반고에 다니던 고3 아들을 둔 부부를 상담했답니다. 학생부를 보니 교과 성적(평균 1.5등급 이내)은 우수했지만 1·2학년 때 읽은 책이 1~2권에 그쳤답니다. ‘왜 독서를 소홀히 했느냐’고 물으니 부모는 “그럴 리 없다. 독서 활동 기록장만 10권이 넘는다”고 답했답니다. 아마도 교사들이 제대로 기록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결국 이 학생은 학생부종합전형을 포기했습니다.

학부모들의 온라인 카페를 보니 비슷한 사연을 발견할 수 있더군요. “내신 2등급인데 ‘세특(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에 단 한 줄만 적혀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원하는 동아리가 학교에 없어 개설을 요청하니 ‘지도교사가 없다’고 거절했다.” “자주 쓰는 문구를 복사해 붙였는지 추상적인 말만 있더라.”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학부모의 불신은 대학·사교육업체 때문만은 아닙니다. 교사들이 초래한 면도 적지 않죠. 물론 e메일을 주셨던 분을 포함해 제가 뵌 상당수 진학교사와 고3 담임들은 사교육을 넘어서는 노하우를 갖추고 열정적으로 학생을 지도해 왔습니다.

하지만 학생부의 중요성과 올바른 기재 요령을 모든 교사가 깨닫고 실천하는 상황은 결코 아닙니다. 학생이 아니라 교사에 따라 입시 성패가 갈라진다면 아무리 좋은 전형도 신뢰를 얻을 수 없겠죠. 물론 특목고·자사고에 비해 일반고가 여러모로 힘에 부치는 건 사실입니다만 교사의 노력으로 극복 가능한 것들도 있지 않을까요.

내년이면 각 당이 대선 공약을 내놓을 겁니다. 요즘 같으면 ‘학생부종합전형 축소’ 공약이 다시 나올 듯합니다. 대입 전형은 학생·학부모의 신뢰가 바탕입니다. 학생부종합전형이 신뢰를 얻으려면 학교와 교사의 노력이 절실합니다.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습니다.

천인성 교육팀장 guch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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