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1등의 책상] “시험에 어떻게 나올까 생각하며 수업 들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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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1등의 책상]
서울 배재고 2학년 김지용군

“학교 수업 중에 버릴 건 하나도 없어”
호기심 많아 새로운 거 배우는 데 재미
엄마는 “숙제부터” 과제집착력 키워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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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용군이 최근 흥미를 느끼고 있는 한국지리 과목을 복습하고 있다. 그는 평일 방과 후에 주로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한다.

‘캐리(carry).’ 게임에서 팀을 승리로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나 행위를 가리키는 은어다. 리그오브레전드(롤)라는 게임에서 주로 사용하는 말이지만, 배재고 2학년 전교 1등 김지용군도 ‘지용캐리’라는 별명으로 불릴 때가 있다. 게임 얘기가 아니다. 내신시험에 나올만한 핵심 내용을 ‘족집게’처럼 잘 집어내서다.

중학교 때는 한국사·사회·과학과 같은 과목의 서술형 시험문제는 적중률이 90% 이상이었다. 그럴 때마다 친구들이 하는 말이 ‘지용캐리’다. 시험문제를 예측하면서 공부하는 게 그가 전교 1등을 한 가장 큰 비결이다.

김군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4년간 그리스에서 생활했다. 한국어를 익힌 상태에서 외국에 간 게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국어·사회·과학 교과서 내용을 이해하는 데도 애를 먹었다. 엄마 문정미(51·서울 명일동)씨는 당시 고1이었던 첫째 딸의 입시를 마친 후 다시 외국에 나갈 마음을 먹었다. 초등학교 과정을 거의 건너뛴 상황에서 한국의 교육방식에 적응하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었다. 해외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특례입학을 노리는 게 더 유리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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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중학교에 올라와 처음 치른 시험에서 전교 9등을 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우수한 성적이 나온 거다. 당시 김군이 ‘스마트폰을 사 달라’고 조를 때마다 문씨가 조건으로 내세운 게 ‘전교 10등 안에 들거나 반에서 1등을 하라’는 거였다. 당시 나머지 가족들이 “그건 ‘안 사주겠다’는 얘기”라고 입을 모았고, 사실 문씨도 안 사줄 요량으로 제시한 조건이었다. 김군이 시험에서 좋은 성적 받는 건 누가 봐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문씨는 김군에서 스마트폰을 사줬다.

중2 2학기 때 처음으로 전교 1등을 한 후 쭉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는 전교 3등이었고, 고등학교에 올라와 치른 첫 시험에서도 전교 1등을 했다.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출제자의 입장에서 주요 개념 파악

그는 창의·융합형 인재에 가깝다. 한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종합경제이해력검증시험(TESAT)에서 상위 1%에 들 정도로 경제학에 관심이 많고, 가장 자신 있고 좋아하는 과목은 수학이다. 인터뷰 하는 내내 가장 많이 한 말이 “재미있다”였다. “요즘 배우는 한국지리는 물론, 화학·국어 등이 다 재미있다”는 거다. 재미없는 단원은 있을지언정 재미없는 과목은 없고,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은 버릴 게 하나도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적 호기심이 풍부해 새로운 사실을 배우는 것 자체에 흥미를 느낀다. 수업시간 집중력도 높다. 대부분의 모범생들도 김군처럼 수업을 열심히 듣는데, 방법은 조금씩 다르다. 김군의 특징은 출제자의 입장이 돼 보는 거다. 교사의 얘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듣고, 꼼꼼히 필기하는 것은 물론, 수업 때 설명하는 내용이 어떻게 문제로 출제될지 한 번 유추해 본다. 또 예전에 배웠던 개념과 융합해서 나올 가능성에 대해서도 한 번 더 고민한다. 김군은 “수업을 열심히 듣다 보면 선생님이 강조하는 내용이 있고, 대충 설명하고 넘어가는 게 있는데 이를 잘 파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내신시험에 어떤 문제가 어떻게 나올지 대충 윤곽이 잡힌다”고 말했다.

학교 시험 대비는 열흘 전부터 집중적으로

수업을 집중해서 듣는 건 그리스에서부터 몸에 뱄다. 사교육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환경이라 수업을 집중해 듣고, 모르는 내용은 알 때까지 선생님에게 묻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초등학교를 전교 1등으로 졸업할 수 있었던 것도 수업 태도와 성실성 덕분이었다. 문씨는 “당시 다녔던 국제학교는 성적보다 수업 참여도 등을 더 중요하게 평가했다”고 말했다.

이 습관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주요 과목은 물론 종교나 진로시간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는다. 김군은 “종교시간이나 진로시간에 이뤄지는 수업도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내용”이라며 “종교시간에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배우고, 진로시간에는 대입지원전략에 대해 알 수 있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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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리 공책 필기(위)와 학교에서 사용하는 영어교재. 왼쪽 위 문항이 ‘어휘 문제’로 나올 것 같아 표시해 놨는데 예상대로 중간고사에 이 문제가 출제됐다.

수업을 집중해 들은 후에는 그날그날 개념을 정리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탓에 단권화 작업은 하지 않는다. 교과서와 수업시간에 필기한 내용을 여러 번 반복해 보면서 완벽하게 이해하는 게 전부다. 이후 친구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자신이 확실하게 이해했는지 점검한다. 어떤 개념에 대해 술술 설명할 수 있으면 더 이상 공부할 필요가 없지만, 헛갈리거나 막히는 내용이 있으면 다시 파고든다.

본격적으로 시험에 대비하는 건 열흘 전부터다. 대부분 학생이 한 달 정도를 시험 기간으로 잡아 놓는 것과 다르다.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기간이 열흘을 넘기면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평소에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을 이용해 친구들과 축구나 농구를 하고 주말에도 운동을 즐기지만, 이 기간만큼은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껴가며 공부에 ‘올인’ 한다”고 말했다.

정답 아닌 보기도 왜 정답 아닌지까지 확인

전교 1등이 되기까지 과정이 수월했던 건 아니다. 그리스에서 돌아온 직후에는 공부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국어가 잘 안 됐기 때문에 교과서 내용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국어 실력부터 끌어올리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한 그는 독서에서 답을 찾았다. 김군은 “초등학교 6학년 때 1년 동안 하루에 책 한 권씩 읽다시피 했다”며 “수업시간에 배울 수 없는 한국어의 미묘한 어감 차이를 소설·수필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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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에 대한 감각은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다. 누가 알려주지 않았는데 스스로 덧셈·뺄셈 개념을 깨달았다. 네 살 때 부모님과 함께 놀러 간 콘도에서 누가 “10층에서 4층으로 가야 한다”고 하자 김군이 “6개 층만 내려가면 된다”고 답을 했다. 그리스에서도 수학과목은 한 학년 위의 수업을 들을 정도로 뛰어났지만, 한 번도 노력을 게을리 한 적은 없다. “수학을 잘하려면 자신의 실력에 안주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늘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가져야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얘기다.

수학 공부를 할 때는 각 문제의 개념과 증명을 완벽하게 이해할 때까지 익힌다. 그는 “다른 사람이 ‘왜 2번이 답이냐’고 물었을 때 나머지 보기가 왜 답이 안 되는지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확실히 알고 넘어간다”며 “모든 문제가 서술형으로 나와도 완벽하게 풀 수 있을 정도는 돼야 시험에 어떤 문제가 나와도 당황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초교 때 하루 하나씩 친구 장점 찾기 훈련

초등학교 때는 그리스에 있었던 탓에 학원은커녕 사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다. 문씨는 딱 한 가지 숙제 하는 습관만 기를 수 있게 도왔다. 자녀가 하교하면 간식부터 내주는 부모와 달리 그는 숙제를 다 해야 간식을 줬다. ‘숙제는 기본 중의 기본’ ‘선생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도 늘 얘기했다. 한번 몸에 밴 버릇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졌다. 문씨는 “한번은 ‘3~20번까지 풀라’는 숙제를 ‘3~20페이지까지 풀라’고 잘못 이해한 적이 있었는데, ‘숙제 범위를 잘못 들은 거다. 안 해 가도 된다’고 했지만 거의 밤을 새워가며 해갔다”며 “어렸을 때 경험 덕분에 과제집착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바른 인성을 기르는 데도 힘썼다. 문씨는 김군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선생님 말씀에 집중하기’와 함께 ‘하루에 하나씩 친구의 장점 찾기’를 강조했다. ‘밥을 맛있게 먹는다’ ‘줄을 잘 선다’ ‘발표를 잘한다’처럼 사소한 내용이었다. 문씨는 “지용이가 사람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먼저 발견하고 배울 수 있는 마음을 갖길 바랐다”며 “이런 교육 덕분에 이타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자란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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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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