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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앤장은 왜 뭇매를 맞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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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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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논설위원

 ‘김앤장’을 향한 여론의 분노와 의혹은 현실법 앞에선 ‘근거 없는 소란’과 다름없어 보인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김앤장에 법적 잘못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김앤장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건 서울대 조모 교수가 옥시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실험을 조작한 혐의로 구속되면서였다. 조 교수는 옥시의 법률대리인인 김앤장 측이 연구 내용 중 옥시에 유리한 것만 발췌해 검찰과 법원에 제출함으로써 연구 결과가 왜곡됐다고 주장했다. 이게 항간엔 김앤장의 의도적 증거 왜곡 의혹으로 일파만파 번졌다.

조 교수가 진행한 가습기 살균제 성분 PHMG의 독성실험에선 폐 섬유화의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임신한 쥐의 새끼가 배 속에서 죽고, 간과 신장 등에 영향을 주는 전신독성의 위험성이 경고됐다. 조 교수 측은 옥시 본사 관계자와 김앤장 변호사가 참석한 자리에서 이 물질이 생체에 유해할 수 있음을 발표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김앤장은 ‘폐 기능에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부분만 발췌해 옥시 살균제가 폐질환을 일으킨다는 증거가 없다는 자료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또 조 교수의 저농도 실험과 동시에 진행된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의 고농도 실험에선 폐 기능에 이상이 생기는 호흡독성이 발견됐다. 한데 이 결과는 인용된 흔적이 없다.

김앤장은 증거를 조작한 것일까. 검찰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수학엔 함수 등 여러 장르가 있다. 한데 다른 건 빼고 함수만 있다고 수학이 아닌 건 아니다.” 연구 결과 내에서 발췌했는데 무슨 조작이냐는 거다. 김앤장을 수사하라는 여론에 대해선 “수사는 혐의점이 있어야 한다. 의혹을 제기하니 확인은 해보겠다”고 했다.

연구 결과 발표에 참여한 김앤장 변호사는 의사 출신이다. 그에게 e메일로 “의사로서 이 물질이 정말 안전하다고 믿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답했다. “나는 폐질환과 독성학 전문가가 아니다. 연구에 대한 판단은 해당 분야 전문가와 법원의 영역이다.” 이들의 말은 증거 조작의 법적 책임이 없다는 설명으로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럼에도 여론의 분노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살면서 지켜야 할 가치는 명문화된 법만이 아니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일 뿐이다. 시민들 분노의 본질은 김앤장이 법을 어겼느냐보다는 우리나라의 최고 엘리트들이 책임 회피에 급급해 윤리적 책임감은 조금도 보여주지 않았다는 절망감일 거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해당 기업의 고의성은 없었다고 본다. 하지만 많은 사망자를 냈고, 아직도 후유장애로 고통받는 피해자가 많다. 옥시 제품은 질병관리본부의 조사 결과 문제가 있다고 지목됐다. 그렇다면 법적 책임 유무를 떠나 피해자를 우선 구호하고 도와야 하는 게 기초적인 윤리 의무다.

생명 우선은 선택이 아닌 윤리적 의무라는 걸 학교에 다닌 사람은 누구나 배웠다. 가해 당사자가 아니라도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으면 벌하는 ‘착한 사마리아인 법’을 법체계 안에 도입한 나라들도 있다. 타인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거짓말은 ‘하얀 거짓말’로 권장된다. 인간이라면 무조건 지켜야 하는 윤리 의무인 칸트의 ‘정언명령’은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고 했다. 내가 타인에게 한 행동을 타인이 나에게 똑같이 했을 경우 용서하고 이해할 수 없다면 그런 행위는 절대 해선 안 된다는 게 행위의 준칙이다.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건 변호사의 윤리다. 그러나 생명윤리는 모든 가치를 앞서는 최상의 윤리다. 생명을 먼저 구호하고, 진실은 진실대로 존중하며 법정에서 의뢰인의 고의성이 없었음을 증명하는 등으로 최선을 다하는 게 변호사의 의무라고 보통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들에게 궁금한 게 있다. 입장을 바꿔 만일 당신 아들이 죽고 아내가 평생 산소통을 메고 살아야 하는데 가해 기업 변호사가 지금의 당신과 똑같이 당신에게 행동했다면 용납할 수 있나. 진심으로 모든 게 용서가 될 때에만 당신은 옳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