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청와대 추종당' 안되겠다는 정진석·김용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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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오늘 새누리당 전국위원회에 추인 안건이 올라갈 비대위(위원장 정진석)·혁신위(위원장 내정자 김용태)가 더 이상 청와대의 추종집단이 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새누리당은 총선 참패 뒤에도 지난 한 달간 위기의식은커녕 집권당이 영원한 것이라도 되는 양 친박·비박 싸움만 해댔다. 보수적인 유권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세력의 주관적 정세 인식, 아집에 가득 찬 행태에 등을 돌렸다. 엊그제 정진석 원내대표 겸 비대위원장이 당 혁신위원장에 김용태 의원을 내정하고, 비박 일색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새로운 비대위원을 구성한 건 그나마 다행이다.

“5·18 행진곡 정부 입장 재고하라”
민의 외면한 대통령 인사도 짚어
새누리 친박 집단행동은 꼴불견

이에 대해 친박계 의원 당선자 20명이 정진석 대표에게 김용태 혁신위원장과 비대위원의 전원 교체를 요구하는 집단 기자회견을 한 건 꼴불견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계파 초월’을 명분으로 삼았는데 그동안 계파가 제공하는 달콤한 꿀을 빨면서 온갖 권력 오만과 국민 무시 행태를 보인 게 누구인지를 되묻고 싶다.

당 비대위가 어제 첫 모임에서 정부가 5·18 행사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에 대해 “보훈처의 결정을 납득할 수 없다. 재고하라”는 입장을 천명한 건 잘한 일이다. 행진곡 제창은 박 대통령과 3당 원내대표 회동 때 대승적 차원에서 실시가 필요하다고 상당한 공감대가 이뤄진 사안이다. 합리적 사고를 하는 상식인이라면 누구라도 제창이냐 합창이냐의 문제로 총제적인 국가 난국 속에 어렵사리 조성된 협치(協治) 분위기가 깨져도 좋다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집권당은 대통령의 입장을 뒷받침하고 국회에서 책임 있는 자세를 취해야 하기도 하지만 대통령이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독단적인 정책을 편다면 가까이서 잡아 줘야 할 책임도 있는 것이다.

김용태 혁신위원장 내정자가 청와대 인사 개편을 평가한 것도 정곡을 찔렀다. 그는 “국민이 요구했던 답은 아닌 것 같다. 당을 떠난 분들, 떠나고자 하는 분들의 마음을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작 교체해야 할 선거 참패, 민심 이반의 책임자는 놔두고 국민적 감동과 거리가 먼 행정형 인사, 신통치 않은 경제라인만 강화됐다고 비판한 것이다. 정권 후반기라고는 하나 박 대통령의 인사, 소통, 정책은 국민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제 집권당도 사안에 따라 공개나 비공개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 집권당은 대통령과 함께하는 존재이기 전에 국민의 뜻을 받들어야 하는 국민 정당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년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의 의지가 있다면 맹목적인 대통령 추종당이 돼선 곤란하다.

비대위와 혁신위는 새누리당 20대 의원 당선자 중 3분의 2쯤 되는 친박세력의 거친 공세를 의식해야 한다. 친박세력 중 일부는 비대위·혁신위의 모든 주장을 친박 대 비박의 갈등구도로 몰아가려 할 것이다. 혁신 노력을 누가 옳은지 그른지 알 수 없는 권력 투쟁으로 변질시켜 패거리의 힘으로 결판 짓는 게 그들의 노하우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생존하려면 이런 패권구도의 덫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