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아메리칸 아이돌,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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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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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엄마들은 노래의 위대함을 안다. 쇠심줄같이 말 안 듣던 아이도 노래에는 반응을 한다. 말에 멜로디·리듬을 약간만 섞으면 눈을 크게 뜨고 잠깐이라도 귀를 기울인다. 사람이 노래를 좋아하는 건 본능이다. 노래할 줄 아는 건 사람의 강력한 무기다.

노래하는 목소리는 모든 악기의 꿈이다. 피아니스트들은 뚝뚝 끊어져 있는 건반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이 건반들을 연주하면서 부드럽게 잇는 게 숙제다. 딱 사람 목소리처럼 만들면 된다. 또 바이올린·첼로 연주자에게 ‘사람 목소리같이 들렸다’는 말은 최고의 찬사다.

한 지휘자는 내게 “오페라 지휘야말로 가장 좋은 지휘 연습이었다”고 했다. 오케스트라가 추구하는 음악의 원리가 노래 속에 다 들어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세계적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중 상당수가 오페라로 경력을 시작했다. 사람 목소리, 노래가 이렇게 대단하다.

그런데 나는 언제부터 노래를 안 하게 됐을까. 목소리라는 눈부신 명기(名器) 하나씩 품은 사람들이 왜 자신의 노래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닫힌 방에서만 노래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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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노래 실력이 그 정도로 형편없진 않다. 캐나다 심리학자 로라 커디의 실험을 보자. 자신을 음치라고 밝힌 사람 100명을 데려다 정교한 검사를 했더니 진짜 음치는 두 명이었다(『음악 본능』, 크리스토프 드뢰서). 또 과학자들은 음악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의 뇌가 음악을 본능적으로 처리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사실, 보통 사람들의 노래 실력에 대한 찬사는 ‘아메리칸 아이돌’ 때문에 한 거다. 2002년부터 미국 폭스TV에서 방영한 노래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선풍적 인기를 끌고, 전 세계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가 된 건 노래를 기차게 잘하는 참가자들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근 이 프로그램이 폐지됐다. 폐지된 정도가 아니라 망했다. 제작사는 빚 4억2000만 달러에 짓눌려 파산 보호 신청을 했다 한다.

이 프로그램의 초라한 폐지엔 의미가 있다.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시들해진 인기도 예사롭지 않다. 이 프로그램들은 보통 사람들의 노래에 대한 기준을 너무 높여놨다. 알고 보면 나름의 방식으로 모두 잘 노래하는데 말이다. 그동안 수고한 ‘아메리칸 아이돌’에 이제 안녕을 고하며, 평범한 사람들의 그저 그런 노래가 가치를 인정받는 시대 맞이를 준비해본다. 스스로 음치인 줄 아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보석 같은 노래를 들을 시간이다.

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