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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연재소설] 판게아 - 롱고롱고의 노래[39] 괴물과의 싸움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레벨업 한 수리, 1313W 지도와 별의 가르침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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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임수연

누이들은 창을 맞으면 불꽃괴물로 변하면서 더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절대 죽지 않는 그들에게 삶과 죽음은 없었다. 오직 폐기만 있을 뿐이었다.

불꽃괴물로 변하는 누이들과 싸우던 중
사비가 폴리페서에게 납치당하고
수리는 아메티스트가 해준 조언을 따라
덴데라 항아리를 이용하는데

수리와 아메티스트, 모나와 전사들의 거친 공격에도 누이들은 점점 거세게 활활 타올랐다. 그리고 불꽃괴물로 변하면 곧바로 전사들의 몸뚱이에 달라붙어 함께 타올랐다.

보랏빛 눈동자를 가진 청순한 소녀 아메티스트는 수리의 머릿속 그림을 그려내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화가였지만 타고난 전사처럼 싸웠다. 아메티스트가 던진 창은 정확히 누이들의 눈알창을 맞추었다. 눈알창을 공격당한 누이들은 불꽃을 일으키지 못하고 쓰러졌다. 누이들의 불꽃은 마치 괴물 옥토퍼시의 기다란 촉수같았다. 불꽃 촉수의 길이만 해도 2m는 넘었다.

“대왕오징어냐 대왕문어냐? 이젠 타 죽는구나.”

마루는 무서워서 얼굴이 허옇게 질려 있었다.

수리는 창으로 불꽃 촉수들의 뿌리를 쳐냈다. 그래야 다시 살아나지 못했다. 모나는 최고의 전사답게 이리 번쩍 저리 번쩍 신출귀몰하며 날아다녔다.

“모나, 이 항아리를 나가야 해요!”

수리가 모나를 향해 소리질렀다. 모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다 없애버리자!”

와아아! 소리를 지르며 마루가 뛰쳐나왔다. 마루의 손에 들린 창은 유난히 가늘고 뭉뚝했다. 마루는 그 창을 앞으로 쑥쑥 내지르며 누이들을 약올렸다. 그러자 어디선가 눈알 달린 창이 날아와 마루의 창을 댕강 잘랐다. 마루의 손에 남은 건 손바닥 만한 길이의 짧은 창머리 뿐이었다. 마루는 냅다 뒤로 도망가 볼트를 껴안고 헥헥거렸다.

“용감한 것도 소용없어. 적의 수가 너무 많아.”

볼트는 마루를 이상하게 쳐다보다가 헤헤 웃었다. 사비가 마루의 머리통을 퍽 때렸다.

“으이구. 덩치 값도 못하네. 내가 간다.”

사비는 바닥에 있는 창을 주워 잽싸게 달렸다.

“와아아. 죽어라~”

그러나 사비의 몸뚱이는 누이가 쏜 불꽃 촉수에 돌돌 말리더니 그만 납치되고 말았다. 이번엔 아빠들이 나서려고 했다. 하지만 수리가 말렸다.

“나서지 마세요. 아빠는 집으로 갈 수 있는 문을 알고 있잖아요? 아빠가 당하면 우리는 영원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해요. 나비를 지켜주세요. 나비를 빼앗기면 안 돼요.”

아빠들은 나비를 품에 안은 채 뒤 그늘 속으로 숨었고 릴리스이브도 그 뒤를 따랐다. 모나의 전사들은 누이들의 불꽃 촉수에 당해 시커멓게 타버려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엇!”

수리가 비명을 질렀다. 모나의 왼팔이 불꽃 촉수에 그만 날아가버렸다. 릴리스이브들이 뛰어가 자신들의 옷을 찢어 모나의 왼팔을 감쌌다. 모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썸은 기다란 목으로 누이들을 획획 쳐내고 있었고 골리 쌤은 썸의 등에 탄 채 썸을 응원하고 있었다.

“잘한다. 우리 썸.”

수리와 모나는 그야말로 종횡무진 싸웠다. 아메티스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누이들은 줄지 않았다. 깊은 어둠 속에서 끝없이 꾸역꾸역 밀려나왔다.

“내가 황금창 눈알을 맞출게. 사비를 데려와.”

모나가 폴리페서의 황금창 눈알을 향해 창을 힘차게 던졌다. 그러나 폴리페서의 황금창에 닿기도 전에 불꽃 촉수가 모나의 창을 동강냈다. 모나는 당황한 채 바닥에 떨어진 아무 창이나 집어들었다. 폴리페서는 기절한 사비를 번쩍 들었다.

“이래도 날 죽일 테냐? 네 친구가 죽을 텐데?”

의기양양한 모습의 폴리페서가 소름 끼치도록 비열하게 웃었다.

“네가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면 이 아이를 괴물의 먹이로 던져 줄 수도 있어. 이 괴물은 너희를 본 적이 없을 거야.”

순간 폴리페서의 뒤쪽 깊은 어둠 속에서 끔찍한 괴성이 들렸다. 수리의 코에서 코피가 주르르 흘렀다.

“온몸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으며 죽을 것이다. 흐흐흐.”

괴물이 괴성을 지를 때마다 모두 피를 흘렸다. 괴물은 누이를 잡아뜯은 뒤 보란 듯이 던졌다. 사지가 뜯긴 채 던져진 누이의 몰골은 공포스러웠다. 공포의 대상을 전혀 짐작할 수 없는 게 가장 큰 공포였다. 큰 덩치인 썸마저도 다리를 떨었고, 골리 쌤도 함께 떨었다.

수리와 모나는 서로 쳐다보았다. 모나가 배짱 좋게 웃었다.

“수리, 넌 특별하잖아? 네 능력을 보여달라고!”

수리도 배짱 좋게 웃었다.

“난 마법사가 아니거든… 그렇지만 아빠의 아들이죠.”

수리는 다시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수리. 이곳은 덴데라 항아리 안이야. 머리를 써. 머리를 쓰라고.”

아메티스트가 수리에게 외쳤다.

“항아리 안?”

수리는 갸웃했다.

“그냥 항아리가 아니야. 덴데라 항아리. 덴데라는 에너지가 응축된….”

아메티스트의 대답에 수리가 쾌재를 불렀다.

“그래 배터리와 같은 거야. 이건 배터리야. 몇만, 몇십만 년 동안 충전되어 있는 배터리라고. 하하하.”

신난 수리는 흥분해서 방방 뛰었다.

“수리야, 진정해. 우리는 아무것도 해보지도 못한 채 피 흘리며 죽을 수도 있어.”

모나는 수리를 진정시켰다.

“수리야. 반대로 생각해 봐. 배터리가 꽉 차있는 상태에서 누이들이 던지는 불꽃 촉수를 잘못 맞으면 엄청난 폭발을 일으킬 수도 있어.”

아메티스트의 말에 수리는 다급해졌다.

“배터리를 내가 사용해야 해. 내가… 내가….”

수리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네가 마지막 열쇠야. 수리야.”

뒤에서 아빠가 크게 말했다. 모나가 수리의 팔을 힘껏 잡았다.

“네가 키라고 했어요. 마지막 키….”

순간 깊은 어둠 속의 괴물이 사비를 채어갔다.

“사비야~!”

수리가 비명을 질렀다. 아메티스트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사비야. 아빠가 갈게. 기다려.”

사비 아빠가 달려나왔다. 수리가 사비 아빠를 막아섰다.

“안 돼요. 제가 해요. 제가 합니다.”

수리는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질렀다.

“반드시 집으로 돌아가야 해요. 제가 못 가더라도 제 친구들을 데리고 가셔야 해요.”

기계들의 무덤 속으로 들어간 수리

수리가 되살아난 좀비기계들 속으로 달려들어갔다.

“수리야!”

깜짝 놀란 마루가 소리쳤다. 골리 쌤과 썸은 고개를 푹 숙였다.

“혀엉….”

볼트는 울음을 터트렸다.

폴리페서는 긴장한 채 지켜보고 있었다. 깊은 어둠 속 괴물의 괴성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때 기계들의 무덤 속에서 빛의 분수가 터져나왔다. 살아나서 그저 서있기만 하던 좀비기계들 속에서 강한 빛줄기가 마구 터져나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부셨다. 빛의 파편들이 빠르게 돌아다녔다. 잠시 후, 빛의 잔해들이 사라지고 온몸을 철갑으로 무장한 기계들이 나타났다. 눈알은 파랗게 빛을 내뿜고 있었다. 철갑기계들은 군사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철갑기계들의 숫자는 점점 불어났고, 폴리페서는 슬슬 뒷걸음질쳤다.

“이건 부활이야. 부활….”

아메티스트가 중얼거렸다.

나비가 다시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수백의 철갑기계들이 갑자기 양옆으로 물러나면서 가운데 길이 생겼다. 수리가 당당하게 걸어나왔다. 수리는 그 전보다 더욱 강해져 있었다. 팔다리 근육은 더욱 단단해져 있었고 눈빛은 찌를 듯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난 레벨업 됐다. 내 군사들을 소개하지.”

폴리페서는 경악했다. 곧바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덴데라를 부셔버려!”

폴리페서는 깊은 어둠 속의 괴물에게 소리쳤다. 괴물이 긴 괴성을 질러댔다. 모두 더 심하게 피를 흘렸고 항아리는 무너질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서 나가자!”

아빠들은 나비와 릴리스이브를 데리고 뛰었고 썸은 골리 쌤과 마루, 볼트를 등에 태우고 달렸다. 수리와 모나는 철갑기계들과 함께 뛰었다.

“그런데 어디로 나가?”

모나가 수리에게 물었다.

“아메티스트! 어디야?”

수리가 불렀다. 아메티스트는 수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암호를 말해. 어서.”

수리는 이제 머뭇거리지 않았다. 이미 암호를 알고 있었다.

“숲으로 돌아갔다!”

순간 먼지바람이 몰아쳤다. 먼지바람이 회오리쳤다. 그리고 먼지바람이 사라졌다. 수리는 어느새 땅 위에 서있었다. 안심하려는 순간 밟고 있는 땅은 그동안 품고 있던 배터리에 강한 열이 가해지면서 뻘건 빵처럼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위험해. 이 땅을 벗어나자.”

그러나 땅은 폭발하지 않았다. 자신이 품고 있던 에너지를 지상에 꽃피웠던 나무에게 주었다. 나무들은 엄청나게 빠르게 자라기 시작했다. 나무는 점점 더 많은 가지들을 만들어냈다. 나뭇가지는 넓게 넓게 퍼져 거대한 나무가 됐다.

수리는 그때 똑똑히 보았다. 나뭇가지는 그웨고난 뱀이었다. N이었다.

“1313W 지도야. 이곳으로 가자. 네피림을 찾으러.”

수리는 힘이 솟았다.

“그 전에 사비, 사비를 찾아야 해.”

모나가 수리의 어깨를 잡았다. 수리도 모나의 어깨를 잡았다.

오래전에 버려진 쓰레기 행성이라 그런지 모든 곳이 사막이었다. 먼지와 먼지를 품은 바람만이 돌아다녔다. 아무런 빛도 없었다. 그래서 하늘을 보고 걸었다. 다섯 개의 별이 유난히 반짝였다. 갑자기 다섯 개의 별이 수리의 눈앞에 바짝 다가왔다. 수리는 멈추었다. 다섯 개의 별의 중앙엔 깊게 푹 파인 우물이 있었다. U자 모양이었다.

“노롤라야. 별이 가르쳐 주고 있어.”

아메티스트가 말했다.

“노롤라 분지라고 하지. 우리가 가야 할 곳은 노롤라 분지야. 별이 떨어졌던 곳이지. 그곳에 노란 집이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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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윤은 시인·소설가.

판게아 시리즈 1권 「시발바를 찾아서」,
2권 「마추픽추의 비밀」,
3권 「플래닛 아틀란티스」 를 썼다.

소년중앙에 연재하는 ‘롱고롱고의 노래’는
판게아 4번째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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