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FC 서울 최용수(43) 감독의 선수 시절 별명은 ‘독수리’였다. 독수리처럼 매섭게 골을 향해 돌진했다. 용맹스러웠지만 거칠고 투박했다. 골을 넣은 뒤 골대 뒤 광고판(A보드)을 뛰어넘다 걸려 넘어진 적도 있었다. ‘인터뷰 못하는 선수’로도 유명했다. 카메라 앞에 서면 버벅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은 ‘그때 그 최용수가 맞나’ 싶을 정도다. 분명한 원칙과 철학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전달한다. 종류를 가리지 않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신문의 사설과 정치·경제·사회면을 즐겨 읽는다. 선수 관리와 용병술에도 물이 올랐다. 감독 6년차를 맞은 그는 두 개의 타이틀(2012년 K리그 우승, 2015년 FA컵 우승)을 얻었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도 경험했다. 올 시즌에는 AFC 챔피언스리그 16강을 일찌감치 확정했고, K리그 클래식(1부리그) 1위(13일 현재)를 달리고 있다. 그는 “숱한 경험을 통해 지도자로서 완전체를 향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철학자가 된 독수리’를 지난 어린이날 연휴에 FC 서울 훈련장에서 만났다.
- ‘슬로 스타터’라는 말이 무색하게 초반부터 잘 나가고 있는데.
- “시즌을 앞두고 ‘왕의 귀환’이 있었다. 중국에서 돌아온 데얀(35·몬테네그로) 말이다. K리그 최초 3년 연속 득점왕(2011∼2013년)의 포스가 장난 아니다. 개구쟁이 아드리아노(29·브라질)의 골 감각은 독보적이다. 오스마르(28·스페인)는 주장으로서 공·수의 밸런스를 잡아준다. 박주영(31)도 회복세가 뚜렷하다. 팀 전체가 안정감을 갖고 시즌을 시작했다.”
- 일본인 미드필더 다카하기 요지로(30)의 성장도 눈부시다.
- “일본 선수들은 기본기가 좋다. 특히 다카하기의 창의적인 패스는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다. 그런 선수가 한국팀 특유의 투지와 근성까지 흡수했다. ‘한국 스타일을 배우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곧 일본 대표팀에 뽑힐 것으로 본다.”
- 얼마 전 인터뷰에서 “나를 관리하고 감정을 통제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 “나도 선수 시절에 ‘꼴통’ 소리 많이 들었다. 감독이 돼서도 선수들에게 ‘레이저’를 많이 쐈다. 6년차 정도 되니까 감정적으로 대했을 때 팀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선수에게도 상처를 준다는 걸 알게 됐다.”
- “열정은 유지하되, 표현은 차분하게”라는 말도 했던데.
- “개성 강한 선수들이 많다 보니까 다양한 사건사고를 경험한다. 매번 지적하고 야단 치면 남아있을 사람 아무도 없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가거나 별것 아닌 것처럼 슬쩍 얘기를 해 준다. 정말 이건 아니다 싶으면 확실하게 짚고 넘어간다.”
- “느낌의 힘을 키워라”는 말을 자주 하던데.
- “상대와 우리 팀을 두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말판을 놓고 또 바꾸고 하다 보면 어떤 느낌이 온다. 그게 딱 맞아떨어질 때가 있다. 그러면 자신감이 생긴다. 젊어서는 실수도 할 수 있지만 다양한 실험을 통해 느낌의 힘을 키워야 한다.”
- 스타들을 어떻게 관리하나.
- “축구 재능은 뛰어난데 사생활이나 멘탈에 문제가 있는 선수들을 부담스러워 하는 감독들이 있다. 왜 그래야 하나? 우리 팀 아데박(아드리아노ㆍ데얀ㆍ박주영) 모두 개성이 강하고 한 획을 그은 선수다. 어떻게 다 오냐오냐 받아줄 수 있나. 그 선수의 재능만 뽑아 쓰면 된다. 내가 학교 선도부도 아닌데 인성 잡겠다고 하면 시간이 너무 걸리고, 내가 피곤해진다.”
최 감독은 지난해 7월, 중국 프로축구 장쑤 세인티 이적설에 휩싸였다. 장쑤는 기본 연봉만 200만 달러(약 22억원),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도 5만 달러를 제시했다. 최 감독은 “시즌 중에 팀을 떠날 수는 없다”며 서울에 남았다.
- 협상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나.
- “중국 팀의 계약조건에 미묘한 점이 있었다. 내가 칼자루를 쥘 수 없으면 나중에 궁지에 몰리게 된다. 그런 걸 알면서 눈앞의 떡밥을 덥석 물겠나. 나를 자신들의 소모품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아 솔직히 기분이 나빴다.”
- 한국 축구의 내수 시장은 위축되는 반면 중국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는데.
- “한국 지도자와 선수가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점은 좋은 거다. 다만 무리하게 갔다가 권한 행사도 못하고 쫓겨오는 건 옳지 않다. 계약 기간보다 소신껏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중국 팀도 눈앞의 성과에 급급해서 우리를 소모품 쓰듯이 하면 안 된다.”
최 감독에게 어떻게 하면 축구의 인기를 회복할 수 있을지 물었다. 그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를 활성화하고, 태국ㆍ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의 ‘축구 영웅’을 영입해 저변을 넓혀야 한다. 또 스토리 있는 선수를 발굴해 스토리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줘야 한다”고 답했다.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