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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언니 오빠’ 화장품시장 주름 잡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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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은퇴 뒤 농촌에서 생활하는 박문규(66·전북 군산)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세수할 때마다 스킨과 로션을 얼굴에 꼼꼼히 바른다. 밖에 나갈 땐 선크림을 잊지 않고 자기 전엔 노화 방지 기능이 있는 에센스도 쓴다. 화장품은 단골 가게에 가서 피부 타입에 맞게 유분기가 적당히 있는 제품으로 직접 골라 산다. 그가 기초화장품에 쓰는 돈은 1년에 40만원 정도. 박씨는 “직장을 다닐 때보다 시간이 많으니 피부에 더 신경 쓰게 된다”며 “피부가 곱고 젊어 보인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KB국민카드 빅데이터 분석
최근 4년 화장품 구입 비용
60대 남 73%, 여 100% 껑충
안티에이징 고가품 애용
지역별로 호남 60대 여성 1위
지방 중심 방문판매 부활 주목

60세 이상 ‘젊은 노인’이 화장품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이른바 ‘액티브 시니어’는 피부 가꾸기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이들은 더 이상 자식이 선물해 주는 화장품을 쓰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니다. 화장품 시장에 노화 방지 바람이 불고 한동안 주춤했던 방문판매 시장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이런 트렌드가 반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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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KB국민카드의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최근 화장품 구매금액이 가장 크게 늘어난 연령대는 남녀 모두 60대 이상이다. 2011년과 2015년 화장품점에서 이용한 금액을 비교한 결과다. 4년 만에 60대 이상 남성의 화장품 구매는 72.8%, 여성은 100.3% 급증했다. 같은 기간 60세 이상 인구가 20%(158만 명·주민등록 기준) 늘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높은 증가율이다.

‘화장하는 60대’는 1인당 연간 구매금액도 가장 많다. 지난해 60세 이상 남성 고객은 평균 22만3000원, 여성은 27만5000원어치의 화장품을 구입했다. 2011년만 해도 60대보다는 50대가 더 화장품을 많이 샀지만 4년 만에 역전됐다. 60세 이상 고객은 화장품을 사는 빈도수(평균 연 2.7회)는 적지만 한 번에 구입하는 금액(평균 9만2000원)이 많다. 나이가 어릴수록 화장품을 자주 조금씩 사는 경향이 뚜렷하다(20대는 평균 6.82회·1만8000원).

KB국민카드 관계자는 “중저가 화장품을 많이 이용하는 20대와 달리 경제력이 있는 장년층은 고가의 기능성 화장품을 많이 사는 경향”이라고 설명했다.

지역별로는 서울·경기도보다는 호남과 충청도 지역에서 60대의 화장품 구입이 크게 늘었다. 은퇴 뒤 귀농·귀촌하는 인구가 증가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특히 전라도의 60대 여성은 1인당 연간 화장품 사는 데 쓰는 금액(35만4000원)이 서울에 사는 또래 여성보다 32% 많았다.

지자체별로는 농촌 지역인 전남 곡성군이 60대 이상의 화장품점 이용금액 증가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 지역은 화장품 로드숍이 없다 보니 방문판매가 활발하게 이뤄진다. 광주와 곡성군을 오가며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는 김효정(53·여)씨는 “고령층일수록 고가의 화장품을 찾는 경우가 많고 노화 방지 관련 제품에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리서치업체 칸타월드패널에 따르면 위축되던 화장품 방문판매가 다시 살아나는 것도 ‘젊은 노인층’의 구매력과 관련 있다. 2005년 25%였던 방문판매 비중은 해마다 줄어 2013년 18%까지 떨어진 뒤 상승세로 돌아서 지난해 19%를 기록했다. 예전에 방문판매를 이용해 본 적이 있는 고령층이 기초화장품뿐 아니라 색조화장품까지 구입하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신고은 연구원은 “지금의 60대는 젊어 보이려는 욕구도 강하고 소득 수준도 받쳐 준다”며 “고령화로 인해 화장품 시장에서 60대 이상 시니어층의 비중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미 고령화가 심화된 일본에선 화장품 소비 인구의 46.7%가 50대 이상일 정도로 시니어층이 화장품 시장을 이끌고 있다(KOTRA). 이 때문에 일본 화장품 업계는 60대 이상 고령층을 겨냥한 신제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기존엔 50대 이상이면 모두 같은 제품을 썼지만 이젠 50대와 60대로 시니어 고객을 나누기 시작했다.

가네보는 지난해 60대 이상을 위한 스킨케어 제품 시리즈 ‘글로우’를 발매했다. 시세이도는 노인층을 겨냥한 종합브랜드 ‘프리올(PRIOR)’을 선보였고, 메이크업 전문 브랜드 가오(Kao)에서는 돋보기 달린 파운데이션을 출시하기도 했다.

나은채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고령화 추세에 따라 국내 화장품 업계에서도 이미 안티에이징이 주요 테마”라며 “시니어 고객을 겨냥해 상품라인을 좀 더 세분화하는 전략이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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