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댈리의 재능과 레스터시티의 기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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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호 25면

2004년 타이거 우즈 주최 이벤트 대회 때다. ‘풍운아’ 존 댈리(사진)가 헬스클럽으로 가던 우즈를 붙잡았다. 댈리는 “(너 정도 되는 스타는) 더 이상 운동 안 해도 되니까 함께 맥주나 마시자”고 했다. 우즈는 “내가 당신처럼 재능이 있다면 나도 당신과 똑같이 하겠다”고 답한 뒤 운동하러 갔다. 댈리는 “저 친구 미친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우즈는 댈리가 자신보다 재능이 있다고 여겼고, 댈리는 골프 황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말도 안 된다고 본 것이다. 누가 더 나은지는 측량할 수 없지만 두 선수의 재능은 매우 뛰어났다.


우즈는 재능에 노력을 더해 메이저 14승을 했고, 댈리는 술, 도박과 폭력사건 등으로 재능을 망쳐 메이저 2승을 했다.


우즈도 부러워한 재능을 다 발휘하지 못했지만 댈리의 메이저 2승도 엄청난 성과다. 재능이 부족한 선수라면 메이저 1승은커녕 출전자격을 얻기도 어렵다.


선수들의 재능과 노력, 또 이에 따른 성공여부는 스포츠에서 중요한 주제다. 기자는 재능이 아니라 노력이 이기는 사회가 됐으면 하고 바랐다. 그게 정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경험이 쌓일수록 점점 더 재능이 중요하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댈리의 방탕한 생활은 유명하다. 그의 친구인 프로골퍼 퍼지 젤러는 약물 중독과 감정조절 장애 등을 겪는 댈리가 50세까지도 못살 거라고, 그래서 50세가 되면 15만 달러를 주기로 댈리와 내기도 했다.

댈리는 최근 50세가 됐고 시니어 투어에 참가할 자격이 됐다. 시니어 투어는 댈리의 입성을 투어 발전의 호기로 여기고 전에 없던 엄청난 홍보를 하고 있다. 도박으로만 5500만 달러를 날린 댈리는 재능 덕에 시니어 투어에서 많은 돈을 벌고 인기를 누릴 것이다.


그게 천재들의 세계다. 댈리처럼 재능을 다 발휘하지 못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재능이 없는 선수 보다는 훨씬 더 성공하는, 일종의 귀족사회다. 바둑을 아무리 열심히 둔다고 해서 아무나 이세돌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최근 축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꼴찌팀 레스터시티가 우승을 했다. 프리미어리그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리그다. 팀간 평등장치인 드래프트와 샐러리캡 제도가 없다. 능력(전통, 인기, 큰 시장)을 가진 명문 팀이 돈으로 계속 뛰어난 재능(선수)을 사서 더 막강한 수퍼팀이 되라는 리그다. 나머지 팀들은 수퍼팀에서 파생되는 자투리를 나눠먹는 구조다.


그 수퍼팀이 하나라면 가끔 망가질 수도 있고 무너뜨릴 수도 있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엔 그런 명문팀이 너댓개나 된다. 꼴찌가 넘을 수 없는 벽 다섯 개를 넘어 우승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스포츠에서 더러 일어나는 골리앗에 대한 다윗의 승리들과는 비교가 안 된다.


기자가 가진 세속의 눈, 현실의 눈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다. 강팀이 한 시즌 동시에 망가진 반면 레스터시티엔 부상선수가 없었고, 챔피언스리그 등에 참가하지 않아 체력에서 유리했다는 등의 분석은 중요하지 않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였다는 성경의 ‘오병이어(五餠二魚)’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일은 다시 일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이 한 번 일어났기 때문에 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해본다. 재능이 부족하지만 노력하는 보통사람들의 삶에 기적같은 드라마가 한 번은 생길 수 있어야 사회가 정의롭다는 생각 말이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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