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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연재소설] 판게아 - 롱고롱고의 노래[38] 황금칩이 보여준 비밀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네피림이 폴리페서를 처리하지 못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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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임수연

“수리야. 진짜 키는 바로 너야! 리키니우스는 제로스톤의 봉인을 열었을 뿐이야.”

처음 우주를 창조했던 네피림은
황금을 얻으려 창백한 푸른 행성을 찾고
자신을 닮은 기계를 만들었으나
예상치 못한 돌연변이가 생기는데

수리 아빠가 말했다.

“네가 바로 문자의 암호를 풀고 세상을 구원할 그야! 너는 매우 중요한 사람이야.”

마루 아빠가 말했다.

“수리라는 이름은 세상의 꼭대기라는 뜻이야.”

사비 아빠가 말했다.

순간 수리의 몸뚱이에서 신성한 황금색 빛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수리의 민머리에 심어진 황금칩이 천천히 튀어나왔다. 황금칩은 선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빙글빙글 돌며 뿌연 은하 모양으로 바뀌었다. 밀키웨이였다. 모두 넋을 놓은 채 쳐다보았다.

은하 속에 갇혀 있던 별들이 스스로 뽐내며 축포를 터트리듯 펑펑 튀어나왔다. 수리 아빠가 먼저 무릎을 꿇었다. 사비 아빠, 마루 아빠가 무릎을 꿇었다. 모두 무릎을 꿇었다. 경외감이었다. 태초의 창조를 보는 듯했다.

사비와 마루는 튀어나오는 별들을 잡아 보고 싶었다. 아메티스트도, 릴리스이브도 마찬가지였다. 일어나서 허공에서 춤을 추며 발광하는 별을 잡으려했다.

별들은 더 빠르게 돌며 소용돌이쳤다. 그러다 점점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드디어 이글거리는 커다란 하나의 눈이 되었다. 눈은 천 개의 태양보다 눈부셨다. 네피림의 눈이었다. 팬옵티콘이었다.

네피림은 기계들의 무덤을 엄마처럼 껴안았다.

“모든 생명의 시작은 네피림이었어. 그리고 네피림은 기계였어. 그러니까 우리 인류는 기계에서 진화한 거야.”

수리가 정신 나간 듯이 외쳤다. 수리는 아메티스트와 릴리스이브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너희는 네피림과 인류의 중간 과정이야.”

네피림은 다시 흩어지며 수만 개의 뿌연 별이 되어 기계들의 가슴속에 콕콕 박혔다. 순간 기계들의 몸뚱이는 크게 휘청거렸고, 왼쪽 가슴에는 빨간 불이 규칙적으로 번쩍였다. 심장이 생긴 것이다.

무덤에 있던 기계들이 하나씩 살아났다. 죽어있던 좀비들이 일어나듯 온몸의 관절을 하나씩 꺾으며 일어났다.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모두 이 장면을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이 똑똑히 쳐다보았다.

아메티스트도, 릴리스이브도 눈물을 흘렸다. 소녀들은 이제야 자신들의 진짜 정체성을 얻은 것이었다. 그들은 돌연변이로 잘못 태어나서 버려진 기계였다. 기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길지 전혀 몰랐던 네피림은 자신들과 달리 가슴에 심장을 갖고 태어난 기계들을 쓰레기 행성에 묻었다. 하지만 네피림은 두려웠다. 잘못 태어난 이상한 기계들이 자신들을 파괴하고 자신들의 행성이 있는 1313W은하를 파괴할까봐 두려웠다.

외계 존재는 전혀 없다고 믿고 있던 네피림에게 이상한 우주여행자는 유일한 행성 방문자였다. 우주여행자는 정확하게 3500년마다 나타났다. 우주여행자는 이상한 기계들이 네피림과 1313W은하를 파괴할 거라고 말해주었다. 우주여행자는 창백하고 푸른 행성을 찾으라고 했다. 그는 외로운 빨간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결국 우주여행자의 말이 맞았던 것이다.

“이 모든 비밀은 너희가 찾아낸 거야.”

수리 아빠는 수리와 수리의 친구들이 자랑스러웠다.

“우리는 아빠만 구하면 돼요. 만약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아빠가 있는 이곳이 바로 우리들의 집이니까요.”

수리가 울먹이면서 말했다. 눈물까지 글썽였다.

“수리야. 그런데 아직 집으로 가진 못해.”

아메티스트는 차분하게 말했다.

“그림이 더 남았어.”

“아빠를 찾았으면 된 거 아니야? 내가 이 모든 비밀을 다 풀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수리는 아메티스트에게 화를 냈다. 사비가 울음을 터트렸다.

“오메가 고고학교에 가고 싶어. 친구들이 보고 싶어,”

아메티스트는 사비를 안아주며 함께 울었다.

“난 너희가 떠나는 게 싫어. 난 가족이 없어. 아빠도 없고 엄마도 없고… 난 너희를 가족처럼 느꼈어.”

“우리도….”

릴리스이브도 다가와 함께 껴안고 울었다. 무뚝뚝하고 과묵한 모나마저 코를 훌쩍거렸다.

드디어 밝혀진 폴리페서와 누이의 비밀

그때 폴리페서가 이들을 찾아냈다. 폴리페서는 전보다 훨씬 늙어 머리는 완전한 백발이었고, 그가 데리고 다니는 누이들은 괴물이 되었다. 눈이 하나만 있거나 코가 없거나 입이 두 개이거나 얼굴에 눈·코·입이 없는 괴물이었다.

“어, 상태가 왜 저러지? 고장난 장난감 같아. 하하.”

마루가 웃음을 터뜨렸다. 수리는 겁도 없이 폴리페서 앞에 당당히 나섰다.

폴리페서는 갑자기 윗옷을 벗었다. 그러더니 수리의 한 손을 잡아끌어 자신의 왼쪽 가슴에 갖다댔다. 그의 가슴이 쿵쿵 뛰었다.

수리는 깜짝 놀랐다. 폴리페서도 인간이었던 것이다.

폴리페서는 네피림이 만든 기계들 중 하나였다. 그의 엄마가 돌연변이였다. 폴리페서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누이들과 다르다는 걸 알았고 그것을 우월하다고 받아들였다. 심장이 있는 폴리페서는 모든 누이들의 추앙을 받았고 서서히 지도자가 되었다. 그리고 황금을 캐며 노예처럼 일하던 누이들을 저항군으로 만들었다. 네피림은 화가 났지만 누구도 죽일 수 없었다. 네피림이 만든 누이들도 마찬가지로 아무도 죽일 수 없었다. 그런데 폴리페서는 달랐다. 심장을 가진 폴리페서는 누군가를 죽일 수 있었고, 누이들이 그 일을 대신하도록 훈련시켰다.

어느 날, 폴리페서는 네피림이 에너지를 얻기 위해 황금을 찾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황금을 빼앗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빼앗은 황금으로 황금산을 만들어 미친 새들에게 지키도록 했다. 폴리페서는 자신이 심장을 창조한 신이라고 믿었다.

“난 너의 적이 아니다. 너의 적은 바로 네피림이다.”

폴리페서는 수리를 설득하려 했다.

“말도 안 돼!”

수리가 버럭 소리질렀다. 폴리페서가 으르렁거렸다.

“진실을 외면하지 마. 너희는 내가 없었으면 태어나지도 못했어.”

수리 아빠가 나섰다.

“맞다. 폴리페서의 말이.”

“아빠. 무슨 말씀이세요? 설마 아빠도 폴리페서 편이에요?”

수리는 아빠에게 대들었다.

“네피림은 처음 우주를 창조했지. 그들을 기계라고 해야 할지 생명체라고 해야 할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황금을 얻기 위해 창백한 푸른 행성 지구를 찾아냈고 황금을 캐기 위해 기계들을 만들었어.”

수리 아빠는 진지했다.

“그런데 돌연변이가 생겼지. 바로 심장을 가진 자들이 생겨난 거야. 네피림은 돌연변이들을 쓰레기 행성에 버렸어. 그런데 폴리페서만은 처리하지 못했어. 전혀 몰랐거든.”

마루 아빠가 말했다.

“네피림을 닮은 기계들은 우리의 기준으로 볼 때 거인들이야. 지구의 역사에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졌던 자이언트, 즉 거인의 존재는 사실 네피림의 창조물이었던 거지. 그들 중 일부가 탈출한 거야.”

사비 아빠가 말했다.

수리는 멍한 표정이었다. 갑자기 받아들이기엔 힘든 엄청난 진실이었다. 폴리페서가 적이 아니며 네피림과 싸워 이겨야만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얘기처럼 들렸다.

“나랑 싸우겠다면 나는 너희를 모두 죽일 수밖에 없다!”

폴리페서는 선전포고를 했다. 괴물처럼 변한 누이들이 무기를 번쩍 들었다. 모나와 그의 전사들도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수리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아직 비밀은 다 풀지 못했고 친구들은 살려야 하고 아빠도 구출해야 했다.

“그런데 왜 누이들은 괴물이 된 거지? 난 저렇게 생긴 괴물들을 오래전에 본 적이 있어.”

아메티스트가 겁도 없이 말했다.

“최초의 존재들인 누이들을 네가 어디서 보았다는 거지?”

폴리페서는 무서운 얼굴로 아메티스트에게 물었다.

“책에서. 우물에 잠시 묻어 두었지만 사라진 노래.”

그 말에 폴리페서의 얼굴이 잔뜩 굳어졌다.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저 누이들은 심장이 없는 것 같은데?”

골리 쌤도 용기 내어 외쳤다. 그러자 수리가 폴리페서에게 눈을 부라렸다.

“맞아. 너의 탐욕을 위해 저들을 아직도 기계인 채로 부려먹고 있어. 그렇다면 너는 네피림과 다를 게 없지. 아니 네피림보다 더 무서워. 네피림은 누군가를 죽이지는 않으니까.”

“다 없애버려.”

폴리페서의 명령에 누이들이 무기를 든 채 성큼성큼 다가왔다.

수리는 기계들의 무덤 옆에 흩어져 있던 기다란 창을 집어들었다. 무기가 될 수 있었다. 아메티스트와 모나, 전사들 모두 창을 집어들고 수리 옆에 섰다.

“덴데라 항아리를 나가지 마. 절대 나가선 안 돼.”

수리가 소리쳤다.

나비가 날개를 파르르 흔들며 사비의 품속으로 숨어들었다. 골리 쌤과 볼트도 사비와 함께 뒤로 물러났다.

썸은 쿵쿵 발소리를 내며 그들 앞으로 다가갔다. 아무도 썸을 공격하지 못했다. 썸은 중립의 땅, 힐라몬스터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이들은 썸을 요리조리 피해서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무기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동물 같았다. 창에는 눈이 달려 있어서 절대 목표물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창을 맞으면 온몸에 불꽃이 일며 불꽃괴물이 되었다. 불꽃괴물이 되어 오히려 수리와 수리의 친구들을 공격했다.

“야아!!”

수리가 소리를 지르며 창을 세우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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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윤은 시인·소설가.
판게아 시리즈 1권 「시발바를 찾아서」,
2권 「마추픽추의 비밀」,
3권 「플래닛 아틀란티스」 를 썼다.

소년중앙에 연재하는 ‘롱고롱고의 노래’는
판게아 4번째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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