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준의 진밭골 그림편지] 7월 12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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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오랜만에 재밌게 구경하고 실컷 놀았습니다. 수백년 된 고목나무 아래서 춤을 추었습니다. 나무 기둥이 텅 비어 어른이 들락거릴 정도인 느티나무 아래서 비원(悲願)도 하였습니다. 원주 지역에서 10년째 노래와 춤과 극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광대패 '모두골'이 부론면 법천사지에 있는 빈 집에 새로 둥지를 튼 것입니다.

'모두골'은 웃기는 광대들입니다. 대학에서 전공이 광대놀음은 아니었을 텐데 그걸로 여섯 광대, 세 가정이 그럭저럭 먹고 삽니다. 그야말로 예인 공동체입니다. 예인이 10년 이상 지역에서 그 재주로 먹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줄 타는 광대처럼 아슬아슬하게 견뎌온 지역 예인들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흔히 예술은 정부나 대학의 지원과 연구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역 주민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그 토대 위에서 자생하는 예술은 삶과 자연의 향기가 야생초처럼 배어있습니다. 시골 빈집 곳곳으로 의도적 고립을 자처하고 들어간 지역 예인에게서 문화 예술의 새 희망이 싹 틀 것입니다.

김봉준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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