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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룡의 수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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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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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논설위원

구조조정이 진검승부라면 시작은 수읽기다. 상대의 칼끝이 어디를 노리는지 정확히 읽어야 한다. 성동격서에 넘어가는 건 하수다. 오른쪽을 겨누었지만 진짜는 왼쪽일 수 있다. 센 상대를 만나면 살을 주고 뼈를 깎을 줄도 알아야 한다. 이번 구조조정의 야전 사령관,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꼭 읽어내야 할 상대와 수는 크게 다섯이다. 한 수라도 삐끗하면 피를 흘리게 된다. 그게 노동자, 대주주, 채권단, 정부 그 누구의 피가 됐든 피값은 결국 국민의 몫이다.

정치권의 수는 주도권이다. 제1야당의 대표는 “구조조정에 협조하겠다”고 했지만 꼬리표를 달았다. “실업 대책과 큰 그림”을 요구했다. 김종인다운 수다. 구조조정 이슈를 선점했다. 그의 지향점인 ‘친노 운동권 탈피’에도 도움이 된다. 수틀리면 없던 일로 하면 된다. 큰 그림과 실업 대책은 언제든 꼬투리가 될 수 있다. 임종룡은 김종인의 수를 “도와주는 건 좋다. 그러나 정치권의 직접 개입은 사양한다”로 받았다. 구조조정이 정치화하면 배가 산으로 간다.

노조의 수는 분담이다. “대주주 고통 분담” 요구가 거세다. 그래야 대량 해고의 칼날을 무디게 할 수 있다. 센 오너를 먼저 상대하다 보면 채권단이든 정부든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대주주에게 많이 받아낼수록 노조가 져야 할 짐도 줄어든다. 개별 기업으로 가면 노조마다 차이가 있다.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임금 동결, 파업 금지, 3000명의 감원을 감내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다르다. “동의 없는 구조조정은 거부”다. 한술 더 떠 임금 인상까지 요구 중이다. 귀족노조답다. 그래야 덜 자르고, 덜 깎는 선에서 타협할 수 있다는 전략이다. 임종룡은 “빅딜은 없다”로 응수했다. 빅딜은 정부가 주선하는 인수합병(M&A)이다. 자칫 노조에 대정부 투쟁에 나설 빌미를 줄 수 있다.

대주주의 수는 돈이다. “내 돈은 가능한 한 덜 넣자”다. 한진해운은 조양호 동정론에 기댄다. 조 회장으로선 억울할 것이다. 제수씨(최은영 전 회장)가 망가뜨린 회사 떠맡은 게 죄라면 죄다. 아버지의 유업이라 거뒀다. 가신들이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 2년 동안 1조원의 돈을 쏟아부었다. 그런데도 사재를 더 넣으란다. 최은영이 자율협약 신청 직전 자기 주식을 몽땅 팔아 치우는 ‘난파선 탈출’만 안 했어도 여론이 이렇게 나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임종룡은 “최은영, 위법 땐 엄중히 책임 묻겠다”며 즉각 조사로 응수했다.

국내 채권단의 수는 면피다. “덜 떼이고 책임은 안 지기”다. 구조조정에서 돈은 곧 피다. 수혈 없이 수술하면 100% 사망이다. 정부가 돈도 퍼주고 메스도 직접 잡는 게 채권단으로선 최선이다. 임종룡은 돈 문제엔 여지를 뒀다. 대신 “채권단을 통해 수술한다”로 응수했다. 권한을 줘야 책임도 물을 수 있다.

해운은 해외 선주들의 수가 중요하다. 이들의 수는 버티기다. 한진해운·현대상선의 부실은 비싼 용선료 탓이 크다. 지금은 하루 1만 달러면 빌릴 배를 4만~5만 달러에 빌렸다. 그것도 10년짜리 장기 계약이 많다. 두 회사는 해마다 1조~2조원을 용선료로 낸다. 정부가 실탄을 지원한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해외 선주들 배만 불리기 십상이다. 현대상선은 선주들과 벼랑 끝 협상 중이다. 용선료를 20~30% 깎아주든지, 회사가 망해 한 푼도 못 건지든지 양자택일하라 으름장을 놓고 있다. 해외 선주들은 한국 정부의 수를 주시하고 있다. 해운은 3면이 바다인 한국으로선 포기할 수 없다. 결국 지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용선료를 깎아줄 필요가 없다. 한진과 현대의 합병은 자금 지원의 좋은 명분이 된다. 임종룡은 “합병은 없다. 용선료 인하 협상이 실패하면 남은 길은 법정관리뿐이다”로 받았다.

마지막 난관은 여론이다. 화끈한 한 방 신속한 해법, 온갖 ‘감 놔라 배 놔라’가 쏟아지고 있다. 잘되면 내 탓, 안되면 네 탓도 극성을 부릴 것이다. 임종룡은 그러나 화끈한 수도, 묘수도 두지 않았다. 그의 착점은 ‘사즉생’이다. 죽기살기, 사방이 적인 곳에 뛰어들어 두 집을 내야 한다.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이정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