瑯?榜 -낭야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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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6호 29면

옛날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안자(晏子)에게 물었다.


“전부산(轉附山)과 조무산(朝?山)을 둘러보고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와 낭야(琅邪)에 이르고자 하는데, 어떻게 해야 선왕(先王)의 유람과 비슷하게 할 수 있겠소?” ‘백성의 슬픔을 슬퍼하고(憂民之憂) 백성의 기쁨을 기뻐하라(樂民之樂)’고 가르치는 『맹자(孟子)』의 구절에 낭야가 나온다.


“추저우(?州)를 빙 두르니 모두 산이다. 서남쪽 봉우리들과 숲과 골짜기 더욱 아름다운데, 마을로 고개 돌리면 숲이 무성하고 수려한 곳이 낭야다(環?皆山也 其西南諸峰 林壑尤美 望之蔚然而深秀者 瑯?也).” 송(宋)의 문장가 구양수(歐陽修)의 명문 ‘취옹정기(醉翁亭記)’ 첫 머리에도 낭야(瑯?)가 나온다.


낭야는 지명이다. 맹자의 낭야(琅邪)는 산둥(山東)성 남부 린이(臨沂)의 옛 이름이다. 진시황이 낭야군을 설치한 곳이다. 명문가의 고향이기도 하다.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 삼국지 제갈량(諸葛亮)의 본관이 모두 낭야다. ‘취옹정기’의 낭야는 안후이(安徽)성 추저우(?州) 서남부의 옛 지명이다.


지난 달 중국 양회(兩會·전인대와 전국정협) 기간에 궈수칭(郭樹?) 산둥성장을 만났다. 지난해 중국 최고 인기 드라마였던 ‘낭야방(瑯?榜)’을 한껏 자랑했다. 드라마는 산둥이 가장 잘 만든다고 치켜세웠다. 돌아와서 54부작 낭야방을 섭렵했다. 낭야산에 자리잡은 강호 무림의 책사(策士)가 태자와 친왕들 사이에서 권모술수로 황제를 옹립하는 권력 투쟁 과정을 박진감 있게 그려냈다. 삼국지에 필적하는 탄탄한 스토리가 빛났다. 원작은 중국 인터넷 소설이다.


‘낭야방’과 함께 ‘태양의 후예’를 봤다. 중국에는 180여 개 방송사와 3000개가 넘는 채널이 있다. 드라마는 연간 1만5000여 편이나 제작되지만 방영작은 2000편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창고행이다. 치열한 경쟁이다. 한국 드라마 몇 편의 성공에 도취하긴 이르다. 틀에 박힌 애정물이 성공의 보증수표는 아니다. 드라마·영화는 결국 스토리다. 작가의 발굴과 육성이 ‘문화융성’의 토대란 의미다.


신경진베이징 특파원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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