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위는 최고잡담회의… 중요 정책 결정도 케세라세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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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총선에서 참패한 새누리당 내에서 최고위원회 등 리더십의 붕괴를 패인으로 꼽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새누리당 최고위는 2014년 7월 14일 전당대회를 통해 뽑힌 선출직 최고위원(김무성·서청원·김태호·이인제·김을동)과 지명직 최고위원(이정현·안대희), 원유철 원내대표 등 주요 당직자가 참석하는 당 최고의결기구다.

하지만 최고의결기구가 공천 파동도 막지 못했고, 민심의 변화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익명을 요구한 새누리당의 전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가 선거 사령탑 역할을 하기는커녕 최고잡담회의로 전락했다”고 토로했다. 새누리당 최고위원회가 왜 이렇게 엉망이 됐고, 왜 계파 싸움의 진원지가 됐을까.

| 이정현·김태호 등 전 최고위원 자성
“당 부대변인 정도가 언급할 논평을 카메라 앞에서 읽으며 자기 과시
열변 토하다 비공개 땐 입 닫거나 자신의 경선 라이벌 험담 늘어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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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새누리당의 첫 호남 재선 의원이 된 이정현 전 최고위원은 20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금 새누리당은 망해 가고 있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그 원인 중 하나로 최고위원회의를 지목했다. 그는 “최고위원들이 논평 수준의 글을 적어 와 줄줄 읊더라”며 “카메라 앞에서 자기 존재를 과시하는 게 당 최고위원의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언론 인터뷰에서 최고위원들이 보여 주기식 발언만 한다고 비판했는데.
“솔직히 최고위원들이 당 부대변인 정도가 언급할 만한 논평 같은 걸 준비해 와 (카메라 앞에서) 차례대로 읽는 게 전부 아니었나. 그건 자기과시를 위한 ‘논평 정치’ ‘코멘트 정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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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회의 때와 비공개회의 때 분위기가 다른가(최고위원회의는 공개발언 후 기자들을 내보내고 비공개로 진행한다).
“공개회의 때 열변을 토하며 서로 싸우던 최고위원들이 기자들이 나가고 비공개회의로 바뀌니까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지내는 경우도 많았다.”(한 최고위 참석자는 “올해 2월 최고위원들의 발언이 50분 가까이 계속돼 중간에 끊고 비공개로 전환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발언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져 5분 만에 회의를 마친 적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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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회의 때 중요 정책을 논의하지 않나.
“결정과 통보만 있는 회의다. ‘케세라세라(que sera sera·될 대로 되라는 스페인어)’ 식으로 가는 최고위원회의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공개회의도 결국 요지는 ‘내가 친한 사람에게 (자리나 공천을) 주자’는 것이었다. ”

| “북 현영철 졸다가 처형” 소식에
“졸지마라” “네가 총 맞는다”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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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위원회의를 고발하는 증언은 많다. 한 최고위원은 “공천 파동이 한창이던 지난달 중순 비공개로 전환되자 A·B 최고위원이 ‘왜 나를 경선에 부치려고 하느냐’ ‘상대 경선 후보가 경력에 문제가 있다’는 등 자신의 민원이나 신세 한탄을 늘어놓기도 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5월 14일 공개회의에선 현영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이 졸았다는 등의 이유로 처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오늘부터 졸지 말라”(김학용 대표 비서실장), “그런 말 하면 네가 총 맞는다”(김무성 대표)는 말이 오가 기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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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김태호 전 최고위원도 ‘고해성사’에 가세했다. 그는 20일 “계파 싸움의 장으로 비쳤던 최고위 중심에 내가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2014년 7월 전당대회에서 선출직 최고위원(3위)으로 뽑힌 뒤 최근(4월 14일) 최고위가 해체될 때까지의 ‘내부 목격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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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위에서 ‘부끄럽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
“회의가 들 때가 종종 있었다. 당 대표가 강한 추진력을 갖도록 해야 되는데 지나고 보니 힘을 제대로 실어 주지 못했다. 배가 산으로 갈 수 있는 위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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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전 대표를 직접 많이 흔들지 않았나.
“유승민 의원 공천을 놓고 갈등이 극대화됐을 때 회의 중 당시 김 대표를 창가로 모시고 간 적이 있다. ‘잘났든 못났든 공천관리위원회는 최고위가 낳은 자식이다, 김무성이 또 결정적인 순간 꼬리를 내린다는 소리를 들을지는 모르지만 집권당은 공동운명체니 잘못된 그림일지라도 (공천위안대로 하고) 여당 대표로서 당당하게 평가받는 게 옳지 않겠느냐’고 강직한 얘기를 했다. 난 그런 게 김 전 대표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뻔하게 계파 갈등으로 비치는 사안에 평행선을 그으며 접점을 찾지 못할 때 ‘이런 거 가지고 이렇게 싸워야 되나’ 하는 회의가 들었다”며 “돌이켜 보면 야당만 탓했지 새누리당이 희망을 보여 주는 게 부족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 지금부터 최고위를 포함해 전부 창조적으로 깨부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일훈·김경희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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