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종신직 아깝지만 돈 걱정없이 연구만 하고 싶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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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 단장은 “유전자 가위는 며칠만 연구를 쉬어도 비슷한 연구결과를 다른 국가 연구팀에서 발표 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사진 김성룡 기자]

서울대 교수가 종신직을 버리고 연구소의 비정규직을 택했다. 김진수(52)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 얘기다. 그는 2014년 4월부터 서울대 화학부 교수와 연구단장을 겸직하다 지난달 18일 서울대에 사직서를 냈다.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 단장
‘유전자 가위’ 분야 최고 권위자
신약 개발, 농작물 개량에 핵심 기술

최근 서울대 그만두고 연구소로
“세계 누구도 못한 연구 해낼 것”

지난 11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 단장은 “서울대에 월세를 내고 사무실을 빌려 쓴다”며 웃었다. 그는 유전자 가위 분야에서 가장 앞선 학자로 꼽힌다. 유전자 가위는 세포 속 유전자를 자유자재로 교정할 수 있는 기술이다.

종신교수직을 버렸다.
“고민을 안 했다면 거짓말이다. 생명공학 회사 ‘툴젠’ 등에서 일하다 2005년 서울대로 왔다. 2014년 종신직을 얻었으니 2년 만에 버린 셈이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연구소를 택한 이유는.
“연구비 걱정 안 하고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게 가장 컸다. 정부 지원을 받는 IBS 유전체교정연구단의 1년 예산은 70억원 정도로 넉넉한 편이다.”

그가 택한 연구단장직은 사실상 비정규직이다. 3년마다 외국인 학자 등으로 구성된 평가위원회에서 연구 성과에 대한 심사를 받는다. 성과가 미흡하면 연구단은 해체된다. 김 단장은 “그럼에도 한번 도전해볼 만한 분야가 유전자 가위”라고 했다. 유전자 가위는 요즘 과학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분야다. 세계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지는 지난해 말 10대 과학 성과 중 첫째로 유전자 가위를 꼽았다.

 해당 분야의 경쟁은 어느 정도인가.
“며칠만 연구를 지체하면 비슷한 연구 결과를 다른 국가 연구팀이 발표한다. 세계적인 경쟁이 그만큼 치열하다.”
유전자 가위의 활용 분야는.
“유전자 가위는 칼과 같은 일종의 도구로 생각하면 된다. 상상력을 넓히는 만큼 다양한 분야에 접목할 수 있다. 우선 신약 개발을 할 수 있다. 유전자 재조합(GMO) 걱정 없는 농작물 개량에도 활용할 수 있다. 또 유전자를 바꿔 질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유전자 치료 에도 널리 쓰일 수 있다.”

세계적인 기술 분야 잡지인 MIT 테크놀로지 리뷰 최신호는 미래를 바꿀 10대 기술을 소개하면서 서울대를 미국 미네소타대와 중국 유전학연구소, 영국 세인베리연구소 등과 함께 식물 유전자의 주요 연구 기관으로 소개했다. 지난해 김 단장이 유전자 가위를 활용해 병충해 저항성을 키운 상추·벼 등을 만든 게 컸다. 그는 2014년 김동욱 연세대 교수와 함께 혈우병 유전자를 정상으로 돌리는 데 성공해 혈우병 치료의 실마리도 찾았다. 이 또한 유전자 가위를 활용한 성과다. 혈우병은 세포 속 특정 유전자가 뒤집어져 발병하는 경우가 많은 질환이다. 김 단장은 “종종 혈우병 환자 부모들에게 e메일을 받는데 그때마다 과학자로서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국내 유전자 가위의 기술력은 세계적으로도 상당히 앞서 있다. 미국·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다. 3세대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인간 유전자를 최초로 교정하는 데 성공했고, 유전자 가위의 세포 내 오작동 여부를 측정하는 기술도 우리 연구팀이 개발했다. 이런 흐름을 이어가면서 세계 어느 연구팀도 선보이지 못한 새로운 연구에 집중하고 싶다.”

글=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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