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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신정국가 이란] 민주·개방 목마름…"이슬람 정권은 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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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이슬람 신정(神政) 국가' 이란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달 반정부 시위로 4천여명이 체포됐던 이란에서는 지난 9일 수도 테헤란에서 다시 정권퇴진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내우외환인가. 이날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핵의혹 시설에 대한 전면 사찰을 수용하라며 이란을 압박했다.

이란의 시위대는 추락하는 경제에 대한 불만, 강압적 신정에 대한 반감, 그리고 개혁.민주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란에서는 지난달 10일간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었다. 대학생.시민 등 수만명이 참가한 9일의 시위는 '민주학생 의거' 4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계속되는 정권 퇴진 시위=테헤란 민주학생 의거는 1999년 7월 9일 대학생들이 이슬람 통치체제의 개혁과 민주화를 요구하며 벌인 시위다. 당시 경찰의 발포로 대학생 한명이 숨졌고 수백명이 체포됐다.

이 시위를 주도했던 학생 지도자들은 지금까지 수감 중이다. 9일 시위대는 엥겔라브(혁명) 광장과 시내 테헤란대 캠퍼스로 몰려들어 민주화와 이슬람 정권의 퇴진을 요구했다.

시위를 주도한 개혁파 학생조직인 통합단결회(OCU)의 알리 모그타데리 등 학생 지도자 세명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이란 정부는 민주화와 경제개혁에 실패했다"며 이란 최고 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비판했다.

이들은 직후 경찰에 체포됐다. 이란 당국은 시위가 격화하자 경찰과 자경단원들을 동원, 최루탄 등으로 시위대를 해산했다. 이날 미국 워싱턴의 국회의사당 앞에서도 수백명의 이란계 미국인들이 이란 민주화와 개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민심 이반 초래한 경제난=경직된 신정 통치로 야기된 경제난이 시위를 촉발한 주원인이다.

현재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경제 상태는 79년 이슬람혁명 이전보다 더 후퇴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8일 "지금 이란인들의 실질소득은 혁명 이전의 4분의1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한국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지난해 이란의 실업률은 20%를 넘는다. 특히 인구의 65%나 되는 25세 이하 젊은이들의 실업이 당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여기에 지난 3년간 15% 이상을 유지해온 물가상승률 때문에 이란은 극심한 고물가에 시달리고 있다.

◇개혁.개방 막는 신정체제=이란이 택한 신정체제는 석유 부국 이란의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혁명 이후 경제 전반을 국영화하면서 이란 경제에서 정부나 정부 소유 기업이 차지하는 부분은 국내총생산의 70%나 된다.

이 때문에 설탕.차와 같은 일반 생필품까지 독점체제로 운영돼 경제적 비효율이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국민은 이를 해결할 방법으로 97년 개혁주의자인 모하마드 하타미를 대통령으로 뽑았지만 그의 개혁.개방 정책은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를 정점으로 하는 신정 지배체제 때문에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하타미 대통령은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외국인 투자를 확대하는 새 외국인투자법을 추진했지만 이슬람 보수파가 장악한 헌법수호위원회는 이를 무산시켰다.

이와 함께 지난 7일 해외의 이란 반체제 인사 사진을 게재한 한 일간지를 폐간시키는 등 이란 종교지도자들은 신정 통치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언론탄압 정책도 고수하고 있다.

서정민 중동전문기자, 채병건 기자

<사진 설명 전문>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지난 6월 10일 대학생들이 이슬람 성직자들의 권력 독점에 항의하는 야간 시위를 하고 있다. 이날 남학생 3백여명은 거리에서, 여학생 2백여명은 교내에서 시위를 벌였다. [테헤란 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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