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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시골은 '詩고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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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도시생활이 제공하는 이런저런 편의를 등지고 삶의 터전으로 전원이나 오지를 택한 젊은 시인 일곱명이 지난 5일 한자리에 모였다. 박남준.유승도.유용주.이원규.이정록.이진우). 함민복 등이 그들이다.

한국 시단의 허리라고 불러도 좋을 일곱명을 전주 한옥생활체험관으로 불러 2시간여 진행된 방담은 문예중앙이 가을호 기획으로 마련한 자리다.

도시생활을 청산해야 했던 사연, 자연과 더불어 시를 쓴다는 일, 떨어져서 바라본 중앙문단의 문제점 등을 들어보자는 취지다. 방담은 이경철 문예중앙 주간의 사회로 진행됐다.

좌장격인 박씨가 먼저 모악산 기슭 폐가로 찾아든 사정을 설명했다. 박씨는 "처음부터 산골에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하는 직장에 염증을 느끼던 차에 우연히 산속 폐가를 소개받았고, '벌지 않는 대신 쓰지 않으면 되지 않겠나'하는 생각에 직장도 그만두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 시인들의 고백이 이어졌다. 현실과의 불화, 경제적 이유, 흘러들다 보니 등 시인들이 도시를 등진 사연은 다양했다. 얘기는 중앙문단에 대한 불만, 경제적인 어려움, 지방생활의 고립감 등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박남준=중앙문단의 문제는 결국 경제적 가치들을 어떻게 분배하느냐, 그런 과정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중앙문단이라는 실체가 과연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기도 한데. 가령 나보다 글이 좋은 지방의 문인을 제치고 내게 원고 청탁이 들어올 때 실체를 실감하게 된다.

이정록=친한 문우들과 어울리며 지방에서 문학하는 외로움을 조금 잊게 된다. 좀 더 거칠게 놀고 싶은데 (중앙문단에서는) 그럴 수 없다. 야합으로 등단한 빵모자들은 정말 볼썽 사납다.

유용주=내 몸이 편한 곳을 찾아 시골로 떠나온 거지 도시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물론 한국 문단에 문제가 많다. 작품이 중요하지 이름은 허명일 텐데, 연로한 분들의 작품들이 대부분 신문.잡지의 윗자리에 소개되지 않나.

그런 면에서 중앙문단이 싫지만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찾아가게 된다. 그렇다고 시골을 벗어날 수도 없고. 그런 이중성, 문학을 미워하면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중성에서 문학이 나온다고 본다.

이진우=내가 운영하는 시 사이트에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 지방 문예지로 등단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중앙에서 그런 사람들을 어디 시인 취급하나. 푸대접에 스스로를 괴롭히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박남준=등단매체를 따지는 것은 우습다. 신춘문예로 등단한 사람들도 몇년 후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이원규=제대로 시를 쓰기 위해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필요하다.

박남준=시인의 경제적 현실이 열악한 것은 사실이다. 시 써서 한해에 1백만~2백만원 벌기 바쁘다. 시 한편에 10만원씩 하나. 기껏 2만원에서 3만원, 많아야 5만원이다. 시인이 한해에 시 몇편 쓰겠나. 나 같은 경우는 기껏 열댓편 정도다.

이정록=역시 가장 뿌듯한 순간은 잘 쓴 시 하나 건진 직후다. 친한 시인 불러내 시 보여주고는 소주를 마구 시킨 적도 있다.

박남준=혼자 비명을 질렀든, 주변과 부대꼈든 나름대로 이름을 알리면서 40대에 이르렀다. 후배들이 혼자 비명을 지르도록 놔둬야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문단의 허리다. 교량.버팀목이 돼야 할 것이다. 방담 전문은 문예중앙 가을호에 실린다.

전주=글.사진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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