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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외교 노선 투쟁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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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신경진 기자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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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베이징 외교가가 최근 후끈 달아올랐다. 우후지쟁(吳胡之爭)으로 불리는 노선 투쟁이 불붙어서다. 논쟁은 베테랑 외교관과 신문사 총편(편집인) 사이의 설전이 도화선이 됐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과 프랑스 대사 등을 역임한 우젠민(吳建民·77) 전 외교학원 원장은 지난달 30일 공개강연에서 포퓰리즘 논조로 유명한 환구시보의 후시진(胡錫進·56) 총편의 실명을 거론해 비판했다. 그는 “아직도 전쟁과 혁명이라는 관성적 사유에 젖어 있는 사람이 많다”며 “예를 들어 환구시보는 늘 극단적인 글을 게재할 뿐만 아니라 후시진 총편은 세계를 엉터리로 해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후시진 총편은 1주일 뒤 반격에 나섰다.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 “우 대사는 구(舊) 외교관, 비둘기파”라고 몰아세웠다. 후 총편은 “환구시보는 다양한 목소리를 보도할 수 있고, 이는 중국 외교의 긍정적 자산”이라고 강변했다. 이어 “기자는 영원히 외교관보다 강경한 매파”라며 “서방은 이 점을 더욱 잘 활용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외교부 기조’와 신문 논조의 차이는 중국 외교의 새로운 공간인데 우 대사가 이를 모르다니 무척 유감”이라며 일격을 가했다.

환구시보는 북한 핵실험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체계 도입 결정을 보도하며 남북 양측에 원색적 비난도 불사한 민족주의 성향의 대중 상업지다. 중국 외교의 운신 폭을 넓히기 위한 계산이 깔려 있었음이 후 총편의 발언에 담겨 있다. 지난 2월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내 사무실에도 이 신문이 있다”는 발언도 이에 대한 지지의 메시지로 이해할 수 있다.

‘우후지쟁’은 네티즌이 바통을 이었다. 급진적인 후 총편 지지파는 비둘기와 매가 함께 있어야 외교의 ‘짜고치기’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외교관은 늘 소통과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주권·영토·안보 문제는 결국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후 총편을 거들었다.

우 대사 지지파도 지지 않았다. “중국이 급진 민족주의에 휘둘린다면 잘못된 길로 접어드는 것”이라며 우려했다. 세계의 대세는 평화와 발전이며, 중국은 폐쇄성을 버리고 개방된 눈으로 세계를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자들도 ‘우후지쟁’에 살을 붙였다. 왕펑(王鵬) 칭화(淸華)대 국제관계연구원 교수는 여시구진(與時俱進)이란 말로 두 관점을 통합했다. 끊임없는 개혁과 시대 조류에 맞는 발전이 최선의 외교노선이라는 주장이다.

‘우후지쟁’은 최근 중국 외교의 능동적 변화와 맞물린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시진핑 주석은 올 초 이란을, 왕이(王毅) 외교부장과 쑨정차이(孫政才) 정치국위원은 최근 미얀마와 쿠바를 찾아 발 빠른 속공 외교를 펼쳤다. 미국을 겨냥한 맞불 외교 성격이 짙다.

문제는 한국 외교다. 논쟁도 변화도 보이지 않는다. 비 내리기를 기다리는 천수답 외교만 수 년째다. 한반도 비핵화와 통일이란 국익을 달성한 방법론을 놓고 치열한 논쟁이 펼쳐져야 할 때다.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