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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미군 입대를 보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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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상렬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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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렬
뉴욕 특파원

지난 1월 말 한·미 양국의 인터넷을 달군 얘기 하나는 워싱턴포스트(WP)의 ‘한국의 청년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지옥(hell)이라 부르며 탈출구를 찾는다’는 기사였다. 거기엔 무한 경쟁 속에 불안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한국 청춘들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기사에 달린 댓글 중엔 “꼭 미국 같다”거나 “미국은 더하다. 노동자들의 혜택은 더 적다”는 내용도 있었다.

과장이라고 보기 어렵다. 미국의 청년실업률은 10.4%, 불완전고용 상태인 30세 미만 비율은 60%나 된다. 완전고용 수준으로 전체 실업률이 떨어졌다는 발표는 이들에게 남의 얘기일 뿐이다. 대학을 나와도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고,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부모에게 얹혀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실에 대한 이들의 불만과 좌절은 하늘을 찌른다. 이번 미국 대선의 양대 현상인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 열풍과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의 인기는 이런 밀레니엄 세대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WP 기사 중 유독 시선을 잡아끄는 대목이 있었다. 많은 온라인 포럼에서 청년들의 ‘헬 조선’ 탈출 방법을 조언하고, 일부는 미국 시민권을 얻는 패스트트랙인 미군 지원을 돕는다는 내용이었다. 실상은 이보다 더 나가 있다. 로스앤젤레스 인근 미군 모병소에는 한국 유학생의 문의와 상담이 줄을 잇는다.

JTBC 보도에 따르면 한국 청년들의 미군 입대는 이미 급증세다. 지난해에만 250여 명이 입대했고, 올 상반기에도 200여 명이 입대를 앞두고 있다. 아시아계로선 최대 규모다.

이들의 선택 배경을 병역 기피만으로 짐작하는 것은 사안을 보는 앵글을 좁게 잡은 것이다. 지원자의 대부분이 군 미필 남성이긴 하지만, 이미 한국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한 이도 드물지 않다. 게다가 입대자의 30%는 여성이다. 미국에선 군인들에 대한 학비나 주거비 지원 혜택이 많다. 그러나 그게 미군 입대 사유의 전부는 아니다. 시민권을 취득해 미국에서 취업하는 데 필수적인 신분 문제를 해결하려는 동기가 크다고 한다. 미군 측도 이 부분을 집중 홍보한다.

미군 입대를 고민하는 청년들이 공통적으로 털어놓는 것은 한국에서 안정된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중 일자리 걱정이 단연 크다.

청년들의 미군행을 바라보는 기성세대는 마음이 막막하기만 하다. 꼭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탓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무작정 말리기엔 한국의 현실이 척박한 것도 사실이다. 한국의 청년실업률(11.8%)은 이미 미국보다 높아졌다. 그나마 임금을 받는 청년 근로자 10명 중 3명 이상도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이제 총선이 끝났으니 한국 정치의 시계는 대통령 선거를 향해 빠르게 움직일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이 대권에 욕심을 부리기에 앞서 청년들에게 일자리와 희망을 줄 수 있는 일부터 했으면 좋겠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청년들이 떠나가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이상렬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