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총선 방송 음악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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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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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누구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했다. 13일 저녁 20대 총선 개표방송에서 배경음악을 유심히 들었다. 특히 방송 시작할 때 나오는, 첫인상이랄 수 있는 음악을 뭘로 선택했을지 궁금했다. 어떤 방송사는 오케스트라에 합창단이 더해진 대규모 음악을 골랐다. 또 다른 방송은 ‘차르르’하는 심벌즈 소리로 시작한 장대한 오케스트라 곡을 만들어 틀었다.

 (이번 총선 개표방송 중 가장 화제가 된 SBS의 방송. 드론에 출구조사 결과를 실어 날려보내는 장면에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장대한 음악을 틀었다. 현악기가 긴 호흡의 멜로디를 연주하고 저음 악기는 강한 비트를, 금관악기는 팽팽한 힘을 들려줬다. 이 장면에 음악이 이렇게 장대하지 않았다면 조금 허술한 드론 장면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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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몇가지를 찾았다. ①비트가 강하다. ②많은 악기가 참여하는 대편성이다. ③일정한 패턴의 멜로디를 반복한다. ④트럼펫ㆍ호른 같은 금관 악기 소리를 강조한다. 유사한 특성으로 조합한 음악들은 엇비슷한 효과를 냈다. 방송을 보면서 나는 긴장감을 느꼈고, 거대한 드라마에 참여한 기분이 됐으며, 이번 총선이 얼마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인지 다시 마음에 새기게 됐다. 이런 감정을 앵커가 말로 만들어내려고 했다면 아마 침이 많이 튀었을 거다. 오프닝 음악으로는 1분 남짓이면 충분했다.

 (뉴스데스크의 트레이드마크인 시그널 음악을 편곡한 MBC 개표방송의 음악. 강한 비트와 반복되는 멜로디, 여러 대가 투입된 대규모 편성 등 개표방송 음악의 전형을 보여줬다.)

음악의 간단한 수법에 우리는 왜 매번 넘어갈까. 금관 악기가 힘껏 불어대면 넓은 시야로 우주 같은 세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 되고, 검은 건반이 뒤섞인 반음계 선율이 들리면 꼭 수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성장배경이나 기억이 다른 사람들인데도 거의 본능적으로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개표방송 음악은 예전에도 비슷한 패턴이었다. 강한 비트, 큰 오케스트라, 반복되는 음형. 선거 결과를 기다리는 우리의 감정도 비슷했다. 2012년 MBC의 대선 개표방송)

수백년 전 어떤 작곡가들은 일정한 작곡 기법으로 듣는 이의 감정을 동일하게 산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기법은 구체적이었다. 왕관 모양을 그리는 음형으로 왕의 존엄을 전달하는 식이었다. 현대에 와서는 폐기되다시피 한 극단적 기법이지만 말이다. 또 동일한 조성의 음악을 들으면 사람들이 비슷한 감정을 가지게 된다는 이론도 있었다. 베토벤 교향곡 ‘영웅’과 피아노 협주곡 ‘황제’가 같은 조성(내림 마)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일리도 있다. 내림 마 조성을 들은 사람 대부분이 품위와 당당함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두 음악의 느낌이 비슷한지? 베토벤의 ‘영웅’과 ‘황제’다. 두 곡은 같은 조성이다. 베토벤은 조성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 특정한 조성으로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싶어했다.)

물론 이런 주장이 완전히 맞는 건 아니다. 이 이론이 현재 서양음악의 주류도 아니다. 하지만 이번 개표방송에서 보듯 사람의 감정은 음악에 따라 프로그램화된 듯 자동으로 흘러나오기는 면이 분명히 있다. 개표방송 뿐 아니라 수많은 영화ㆍ드라마ㆍ광고에서 그래왔다. 음악가 입장에서 보면 사람 마음 움직이기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번 총선에 뛰어들었던 후보들은 전혀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말이다.

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