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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것보다 낫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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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석
고수석 기자 중앙일보 부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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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북한학 박사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선거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영원한 승자와 패자는 없다. 승자는 겸손해야 하고 패자는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 4년은 금방 간다. 까불면 훅 날아간다.

국회는 그동안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한국에서 ‘가장 소모적인 집단’이라는 오명을 들어 왔다. 세금만 축내고 일을 하지 않아서다. 그런데 그런 곳에 한국의 인재들이 기를 쓰고 가려는 이유는 뭘까? 말로는 국민들을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어느 국민이 그것을 곧이 곧대로 믿겠는가. 국민들은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냥 속아 주는 것이다. 시원찮아도 없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국회가 남북관계에 낄 자리는 없다. 국가정보원· 통일부에서 북한 정보를 귀동냥하거나 수틀리면 국가정보원장· 통일부 장관 등을 해임하는 정도다. 남북관계는 대통령과 행정부가 주도하고 있다. 문제는 현재의 5년 단임제로는 지속가능한 남북관계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18년 동안 확인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화해협력정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평화번영정책’,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핵· 개방· 3000’은 5년 만에 단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내년에 당선될 대통령도 대북정책을 내놓겠지만 또 5년 뒤에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남북관계는 5년 만에 해결할 수 없다. 이는 남북뿐 아니라 미· 중· 일· 러 등 국제사회가 얽히고 설켜 있고 남남 갈등이 뿌리 박혀 있어 5년은 어림도 없다. 그리고 대통령 임기 5년을 따져보면 첫 1년은 검토하느라 보내고, 마지막 1년은 대선으로 아무것도 못한다. 결국 3년이다. 5년이 아닌 3년 안에 남북관계를 어찌해 보겠다고 하는 것은 과욕이다.

2012년 대선에서 양쪽 캠프에서 내놓은 대북 관련 공약을 비교하면 명칭만 다를 뿐 내용은 90% 정도 비슷했다. 대북 관련 공약만큼은 여야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방증이다. 내년 대선에서도 마찬가지일 게다. 극우· 극좌만 피하면 합리적인 공통점이 많을 것이다.

이런 점을 20대 국회가 유념할 필요가 있다. 5년 단임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여야의 공통점을 잘 활용하면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 대통령과 행정부가 주도하는 남북관계에 국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해 지속가능한 남북관계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지금은 독점보다 나눠야 성공하는 시대다.

내년 대선 과정에서 여야가 합의하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남북관계는 여야의 구별을 두지 말고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여야가 합의한 내용을 지킨다고 약속하면 가능하다. 예를 들면 통일부 장관은 여야가 합의한 사람으로 임명한다는 등이다. 남북관계는 지금이 아니라 후손들을 위해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일이다. 내 이익과 결부시키지 말자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국회를 보면 이런 기대가 역효과가 날 우려도 있다. 하지만 20대 국회에는 희망을 가져 보자.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낫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북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