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만든 음악·그림·소설…일본 “사람처럼 저작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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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의 화풍을 학습한 구글 인공지능(AI) ‘딥드림’이 그린 그림. [중앙포토, NHK 캡처]

일본 정부가 인공지능(AI)이 만든 음악·그림·소설 등의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 마련에 나선다. AI를 활용해 작품을 창작한 사람·기업에 투자비용을 회수할 기회를 줘 AI 개발자의 권리를 지켜주겠다는 의도다.

개발자 투자비용 회수할 수 있게
창작물 도용·표절 막는 법 추진
한국도 저작권 보호 방안 논의 중

15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따르면 일본 지적재산전략본부(본부장 아베 신조 총리)는 AI가 빠르게 발전하는 상황을 반영해 법 정비에 착수했다. 지적재산전략본부 산하 위원회는 18일 관련 보고서를 발표한 뒤 다음달 추진 계획을 마련한다. 현행 일본 저작권법에선 ‘사람’이 창작한 작품만 저작권이 인정된다. 저작물을 인간의 고유 영역인 ‘사상·감정의 창작적인 표현’에 국한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본에선 AI 창작물이 도용당하거나 표절 대상이 돼도 권리 보호가 안 되고 손해배상 청구도 불가하다. 이런 상황이 AI 발전에 걸림돌이라고 판단한 일본 정부가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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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소설 창작 프로젝트를 이끄는 마쓰바라 진(松原仁) 일본 인공지능학회장. 그가 AI를 이용해 쓴 소설은 공상과학 문학상 1차 심사를 통과했다. [중앙포토, NHK 캡처]

일본 지적재산전략본부는 ‘AI 창작물’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 조항을 신설할 방침이다. AI 창작물을 무단 도용하는 사람에게 배포 정지를 명할 수 있고 AI 창작물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도 인정한다. 우선 인간의 간단한 지시로 음악을 만드는 ‘자동작곡시스템’부터 법적 보호를 받을 전망이다.

AI를 통한 원활한 콘텐트 제작을 위한 법 정비도 추진한다. AI는 다양한 예술 작품에서 특징을 추출해 창작에 활용한다. 이런 경우 AI 창작물의 원재료가 되는 작품의 권리자에게 일일이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도록 저작권법 개정을 검토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현행법상 AI의 저작권이 보호되지 않는다. 신창환 한국저작권위원회 법률상담관은 “한국 저작권법도 ‘인간’의 사상·감정을 표현해야 한다고 명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AI 저작물이 많아지고 질이 개선될수록 AI 저작물의 권리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AI 개발자의 공로를 인정하고 지키는 방향으로 법을 바꾸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 저작권법은 ‘인간이 아닌 작가의 경우 직접 사진을 촬영했어도 저작권이 자동 발생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 의회 산하 저작권사무소는 원숭이가 찍은 사진이나 코끼리가 그린 벽화는 저작권이 없다고 명시했다. 영국은 1988년 저작권법 개정으로 컴퓨터가 만든 작품의 저작권은 ‘창작에 필요한 조치를 한 사람’으로 정했다.

AI의 예술 활동은 활발하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네덜란드 기술자들과 공동 개발한 AI ‘넥스트렘브란트’는 렘브란트의 화풍을 재현해 그림을 그렸다. 지난 2월 구글이 개발한 AI ‘딥드림’의 그림 전시회도 열렸다. 구글과 함께 전시회를 주최한 단체는 그림들을 팔아 9만7600달러(약 1억1265만원)를 벌었다. 일본에선 AI가 쓴 소설이 지난달 일본 공상과학(SF) 소설의 아버지로 불리는 호시 신이치(星新一) 공상과학 문학상에서 1차 심사를 통과하기도 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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