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는 주차 단속 안해요 … 상권 키우려는 서구의 고육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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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밤 대구시 비산동 서부시장 앞 달서로 변에 차량이 줄지어 주차돼 있다. [사진 대구 서구]

지난 12일 오후 8시 대구시 서구 비산동 서부시장 앞. 왕복 6차로인 달서로 양쪽 가에 차량 10여 대가 세워져 있다. 카메라를 장착한 주차 단속 차량이 수시로 지나다니는 곳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주차 대수는 더 많아졌다. 막 주차한 30대 운전자에게 다가가 “차선을 물고 주차를 하면 불법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불법 주차’를 할 수 있어 이곳을 찾은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달서구 성서공단에서 이곳까지 왔다고 했다.

오후 7시부터 오전 7시까지
주차장 없는 영세한 식당 위해
도로 폐쇄회로TV도 촬영 안해
“주차 차량 때문에 불안” 우려도

도대체 무슨 일일까. 서구는 지난달 21일부터 야간 불법 주차 단속을 사실상 그만뒀다.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다. 주요 도로에 설치된 단속용 폐쇄회로TV(CCTV) 11대도 오후 7시면 촬영하지 않는다. 횡단보도·인도·유턴 지역과 버스정류장 주변에 주차하거나 도로 가장자리에 이중 주차만 하지 않으면 단속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차들이 서슴없이 도로변에 주차하고 있는 이유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도로 끝 차선을 물고 차량을 세우는 것은 불법이다. 적발되면 과태료 4만원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불법 주차 단속 권한을 가진 서구는 이를 완화했다. 김천호(56) 서구청 교통과장은 “점심시간 단속 유예 제도를 야간에도 도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차 단속은 기초자치단체 형편에 맞게 조정할 수 있다는 대구시의 주차 단속 지침에 따른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구의 기초지자체가 점심 시간 식당 주변 도로에 대한 주차 단속을 두 시간 동안 하지 않는 것과 같은 개념이라는 의미다.

이는 지역 상권 활성화를 위한 것이다. 서구의 식당은 모두 4553개. 하지만, 주차장이 없는 영세한 식당이 많아 장사가 잘 되지 않는다고 한다. 대형 주차장을 갖춘 식당이 많은 수성구나 달서구에서 회식을 하는 사람이 많아서다. 그래서 야간 불법 주차를 허용하는 ‘역발상’을 한 것이다.

상인들은 반기고 있다. 원대동 북비산네거리에서 갈비식당을 하는 이규근(50)씨는 “차량 네 대를 세울 공간밖에 없어 손님들이 불편해 했다. 야간 주차 단속이 없어지면서 전보다 손님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서구청 인근 식당 주인 정인형(61)씨는 “식당 앞 도로에 저녁 시간 차를 세울 수 있게 되면서 다른 지역에서 차량을 몰고 오는 단체 손님이 보이기 시작했다. 상인들을 위해서라도 야간 주차 단속을 계속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내당동 두류네거리에서 해물식당을 하는 김대남(55)씨는 “도로 가장자리에 길게 늘어선 차량 때문에 주차장이 있는 식당의 손님들이 드나들기 어렵다”고 했다. 식당 출입로를 막는 경우가 많아서다. 중리동에서 만난 40대 택시 운전기사는 “저녁 시간 도로 가장자리에 차량이 많이 세워져 무질서해 보인다. 주차 차량이 출발하면서 갑자기 도로 쪽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많아 불안하다”고 지적했다.  

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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