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여부’와는 어울리지 않는 짝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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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4·13 총선이 끝났다. ‘당락 여부’에 따라 후보들의 희비가 엇갈린다. ‘당선 여부’에 따라 정치적 위상이나 입지가 바뀐 이도 있고, 이제부터 진짜 싸움이라며 대선 행보를 가속화하는 이도 있다.

그러함과 그러하지 아니함을 뜻하는 ‘여부’와 ‘당락’은 어울리지 않는다. ‘당락(當落)’이 당선과 낙선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당락’ 뒤의 ‘여부’는 군더더기다. “당락에 따라 후보들의 희비가 엇갈린다”고 해도 충분하다.

‘당선 여부’는 가능하다. ‘당선’ 뒤에 ‘여부’가 오면 ‘선거에서 뽑혔는지, 뽑히지 않았는지’란 의미가 된다. 찬성 여부, 반대 여부, 존속 여부, 폐지 여부, 합격 여부, 불합격 여부 등과 같이 ‘여부’ 앞에 상반되는 개념으로 구성된 단어가 오지 않을 때엔 적절히 살려 쓸 수 있다.

서로 반대되는 뜻이 어울려 이뤄진 단어 뒤에 ‘여부’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선관위가 사건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고 있다”와 같은 경우다. ‘진위(眞僞)’는 참과 거짓 또는 진짜와 가짜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진위 여부’는 중복 표현이다. “선관위가 사건의 진위를 파악하고 있다”로 바루어야 한다.

“선거 승패 여부를 떠나 총선이 끝나면 사퇴한대”란 표현도 어색하다. ‘승패(勝敗)’가 승리와 패배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므로 “승패를 떠나”라고 하는 게 자연스럽다. 굳이 ‘여부’란 단어를 살리고 싶으면 “승리(패배) 여부를 떠나”로 바꾸면 된다. 성패(成敗)·존폐(存廢)·찬반(贊反)·생사(生死)·진퇴(進退)도 마찬가지다. 그런지, 아닌지를 뜻하는 ‘여부’를 이들 낱말 뒤에 쓰면 의미가 겹치게 된다.

이은희 기자 e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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