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경제 현안 해결은 3당 공통분모 찾기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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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만의 여소야대(與小野大)라는 총선 결과가 나온 14일. 정부 경제정책의 ‘조타수’ 역인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은 “애초의 정책 기조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정치 지형과 관계없이 정부로선 경제 활성화와 구조개혁에 방점을 둔 정책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얘기였다. 그는 이날 경제단체와의 간담회에서 “모든 경제활성화법안을 19대 국회 회기 내 처리해 달라는 간곡한 호소가 꼭 결실을 보기를 기대한다”며 “정부 차원에서도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모아 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개혁법·규제프리존 등
당정‘협공 전략’힘 빠져
여야 경제 프레임 큰 차이
정부도 소통·협치 강화 필요
이기권 "국회로 출퇴근 할 것”

이날 간담회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입법 드라이브’를 걸기 위해 며칠 전 긴급히 마련한 자리였다. 국회에 계류된 노동개혁법안과 규제프리존 특별법, 서비스산업활성화법 등은 19대 국회가 문을 닫기 전 통과시키겠다는 게 정부의 목표였다. 20대 국회로 넘어가면 원 구성, 법안 발의, 여야 논의 등을 다시 거쳐야 하고, 곧이어 대선 시즌이 이어지면서 법안 통과가 사실상 물 건너갈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였다. 정부는 일단 계획대로 ‘맨투맨’ 설득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다음주부터 국회로 출퇴근하며 야당 설득 작업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당의 참패로 끝난 총선 결과에 다소 맥이 풀리는 분위기는 뚜렷하다. 그간 정부의 ‘입법 전략’은 과반수를 차지한 여당과 함께 국회 내에서 ‘설득전’을 벌이고 외곽에선 경제단체들과 ‘여론전’으로 압박을 가하는 구조였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만들어도 입법이 안 되니 소용없다”며 호소하는 방식이다. 이에 더해 청와대는 입법에 소극적인 야당을 향한 ‘심판론’도 제기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방식은 작동하지 않았다. 20대 국회 지형은 정부 입장에서 오히려 19대보다 훨씬 험준해졌고 불확실성은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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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정치 지형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정책추진 방식과 일정한 기조 변화는 불가피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는 만큼 입법 절차가 필요한 정책들은 치열하게 논의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거쳐 여야가 공히 받아들일 수 있는 쪽으로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정부 한 관계자 역시 “국회의 영향력이 막강한 데다 정부로서도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어떤 식으로든 정책에 반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추진 방식을 ‘소통과 협치’로 전환하는 것은 지난한 과정이 될 전망이다. 선거 과정에서 경제가 핵심 이슈였던 데다 각 당이 현 경제 상황을 바라보는 프레임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여당은 ‘경제 활성화’를, 더불어민주당은 ‘경제민주화’를, 국민의당은 ‘공정경제’를 각각 공약의 전면에 내세웠다. 현 정부의 정책 기조와도 세제는 물론 산업정책과 공정거래 등 경제정책 전반에서 충돌하는 부분이 많다. 예컨대 정부는 증세 대신 비과세·감면을 통해 복지 재원을 마련한다는 입장인 반면 더민주는 대기업 중심의 법인세 인상을 주창하고 있다. 당장 올해 세제개편안을 놓고 국회에서 ‘격전’이 벌어질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정부의 입장이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전반적으로 규제를 푸는 데 방점이 있다면 야당은 대기업 규제와 중소기업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더민주의 경우 특정 업종의 대기업 진입을 차단하는 ‘중소기업적합업종 특별법’을, 국민의당은 대기업이 납품업체와 이익을 나누는 ‘이익공유제’와 원재료비 인상분을 납품가에 반영하는 ‘납품단가연동제’의 시행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여야의 경제정책 기조가 꼭 충돌하는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극한 대치를 하던 양당 체제에 비해 3당 체제는 잘만 활용하면 공통분모를 이룰 가능성을 넓힐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새누리당 강석훈 의원이 발의한 ‘규제프리존 특별법’의 경우 20대 국회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 국민의당 의원들과 공동 발의했다. 수도권을 제외한 광역 지방자치단체별로 2개씩 전략산업을 정해 해당 지역에선 관련 규제를 전면적으로 풀어주고 정부도 각종 지원책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벤처기업 육성에 관심이 큰 국민의당의 경우 기존 더민주에 비해 긍정적 입장이란 게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선거 과정을 통해 야당도 경제 살리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인식을 하게 됐을 것”이라면서 “무조건 반대만 하다간 국민의 외면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이제부터라도 차분하게 법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도에 대한 인식 차이는 있지만 여야·정부가 기본적인 인식을 같이하는 대목도 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각각 공약으로 내세운 최저임금 인상이 그렇다. 정부 한 관계자는 “최저임금 인상은 국제적인 흐름”이라며 “적정한 선만 지킨다면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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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주거난을 해소하기 위한 임대주택 확대 공급 역시 여야가 한목소리고 현 정부가 추진 중인 ‘행복주택’ 사업과도 맥락이 닿는다. 청년 일자리난 역시 여·야·정 모두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금융통화위원을 지낸 최운열(더민주) 당선자는 “각 정당이 청년 일자리 늘리기 공약을 내놓았는데 공약으로 끝내지 말고 머리를 맞대고 실행 가능한 현실적 대안을 빨리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제기한 적극적 재정·통화정책, 기업 구조조정 촉진 역시 총론에선 여야가 타협을 이룰 여지가 없지 않다는 분석이다. 야당에도 경제·금융 전문가와 이전 정부의 각료 출신 등이 상당수 진입하면서다. 정부 역시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최근 “적극적 거시정책을 펴겠다”면서 이런 흐름에 보조를 맞춰가고 있다.

조민근·조현숙·하남현 기자 jm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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