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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식당 예쁜 처자들, 며칠 전부터 안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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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도망갔어요.”

지난주 북한 종업원 13명이 집단 탈출한 중국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의 북한 식당 류경식당 주변 상인들의 말이다. 식당 주변은 10일 하루 종일 을씨년했다. 굳게 닫힌 문은 아무리 두드려도 반응이 없었다. 택배 기사 서너 명도 허탕을 치고 돌아갔다. 주변 상인들은 지난 7일 갑자기 식당 영업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류경식당은 닝보시가 지난해 9월27일 조성한 전통 상업지구 난탕라오제(南塘老街)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

“조선 춤과 무용을 보노라면 즐거움 생겨나고(觀看朝鮮舞蹈樂生其中), 고려의 아름다운 요리를 음미하면 온갖 맛이 무궁하다(品賞高麗佳?四味無窮).” 정문 기둥에 새겨진 대련(對聯) 문구는 애써 찾아왔다 허탕치고 돌아가는 손님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닝보에 북한 식당이 이곳밖에 없어 찾았는데.” 주말을 맞아 150㎞ 떨어진 항저우(杭州)에서 아들 부부와 함께 닝보 여행을 왔다는 70대 천(陳) 씨는 아쉬운 표정이었다.

식당 안에는 직원의 인기척이 있었지만 반응은 없었다. “회사 경영진이 곧 대책을 내놓을 겁니다.” 어렵게 연결된 통화에서 무슨 일이 생겼냐고 묻자 여직원은 즉답을 피했다. 전날 예약이 가능한지 문의하자 “언제 영업을 다시 할 지 모른다”고 대답했다.

류경식당과 달리 인근 식당은 삼삼오오 찾아온 가족 손님들로 붐볐다. 반면 이날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류경식당 문을 두드린 손님은 네 팀에 불과했다. 고질적 영업난에 시달렸음을 시사한다. 식당 옆에서 일하는 중국인 주차 관리원은 “이 식당이 바로 뉴스에 나온 식당이란 걸 어제 알았다. 어리고 예쁜 처자들이 십 여명 있었는데 며칠 전부터 안보였다”며 말했다. 그는 “북한에 잡히면 총살 당할 텐데. 잘 보호해달라”란 말도 했다.

전날 자정 무렵 식당 인근 재즈바에서 만난 바텐더는 “류경식당은 이 거리에서 유일하게 한국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식당이었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손님이 적었다. 대신 공연은 인기가 좋아 잘 되기를 바랬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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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식당은 한국인보다 현지인을 주로 공략했다. 700~800명 규모의 닝보 교민사회와도 거리가 멀어 한국인은 거의 찾지 않았다. 인근 식당 주인은 비싼 가격으로 손님 불평이 잦았다고 말했다. 명태탕은 108위안(1만9000원), 해물파전은 78위안(1만4000원)에 팔았다. 순수 북한 요리 대신 중국의 강남 요리와 혼합한 퓨전 스타일로 승부를 걸었지만 비싼 가격이 문제였다. ‘닝보 사람이 없으면 장이 서지 못한다(無寧不成市)’란 말에서 보듯 계산이 밝은 닝보에서 터무니 없는 고가 정책은 외면 받았다.

식당 규모는 상당했다. 중국 강남의 전통 가옥 형태의 2층 건물로 공연 무대를 포함해 150명을 수용할 정도로 넓었다. 사방 담벽에는 중국 오성홍기와 북한 인공기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벽에는 백두산 천지 등 북한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서울 인사동 거리와 비슷하게 900m 도로 좌우에 조성된 난탕라오제는 전통적 외관과 달리 서양과 일본 레스토랑, 인터넷 카페, 라이브 공연장 등이 모여 있다. 10일 하루 동안 수 만 명이 찾을 정도로 상권은 붐볐다. 닝보 공상국을 통해 확인한 결과 류경식당 자본금은 1066만위안(19억만원)으로 지난해 말 대표이사와 지분이 모두 왕쑹(汪松)에서 왕첸첸(王錢錢)으로 변경됐다. 단둥(丹東)이나 옌지(延吉) 류경식당과의 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탈북자들의 도피 루트로 보이는 닝보 공항에서는 지난 7일 태국 방콕, 베트남 나짱, 싱가포르행 국제선이 이륙한 것으로 확인됐다. 태국이나 베트남을 통해 한국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북한 사정에 밝은 중국 소식통은 “이번 탈출 사태는 중국과 무관하다. 김정은(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제재의 효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중국이 손해 볼 것은 없다”고 말했다.

닝보=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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