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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태영 “수원 100만 넘은 지 14년…기초단체 묶여 불이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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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올 초 어린이집과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전국적으로 보육대란 우려가 고조되고 이념 갈등이 격화됐다. 하지만 당시 경기도 수원시민들은 큰 혼란을 피했다. 수원시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 예산으로 4개월 반치 누리과정 긴급 예산(아동보육료 및 운영비 보조금 사업 예산)을 편성했기 때문이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공약 사항이니 정부가 책임지라며 버텼지만 더민주 소속 염태영(56) 수원시장은 당론보다 민의를 우선했다. 수원시의 결정이 여론의 지지를 받으면서 다른 지자체들이 수원시의 뒤를 이어 긴급 예산을 편성해 누리과정 대란은 일단 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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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태영 수원시장은 올해 K리그 클래식에 진출한 시민구단 수원 FC의 구단주다. 4일 화성 행궁 앞에서 유니폼을 입고 축구공을 컨트롤하고 있다. [사진 임현동 기자]

염태영 시장을 4일 수원시청에서 만나 그때 그런 결정을 한 배경을 물었더니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는 “누리과정 문제는 정파와 진영 논리를 떠나야 하는 문제다. 아이들·학부모·보육교사 등 시민들의 혼란과 불안을 막는 것이 단체장의 책임이자 역할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정당 소속 기초단체장이 당론과 다른 결정을 하기 쉽지 않을 텐데.
“먹고사는 문제보다 진영 논리나 당리당략이 더 중요한가. 진영을 벗어나 우리 정치도 공감과 공존의 영역을 넓히자는 꿈을 현실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다시 누리과정 논란이 벌어질 조짐인데.
“누리과정 문제는 아이를 둔 부모와 어린이집 관계자들에게는 ‘먹고사는 민생 문제’이자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시민의 눈높이인 상식에 기초해 판단했고 앞으로도 똑같이 판단할 것이다.”
근본적인 해법은 없을까.
“사실 누리과정은 대통령 공약사항이므로 국가가 재원을 부담하는 것이 맞다. 당면한 예산 문제는 중앙정부 일반예비비로 먼저 해결하고 사회적 논의기구를 구성해 근본적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가가 재정 부담의 주체가 돼야 하고 논란의 소지가 없도록 법적·제도적 정비도 필요하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로 이원화된 어린이집 인가·관리·지원·감독체계를 통합해야 한다.”
기업인 출신이라 실질을 더 중시하나.
“수원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자부심이 있다. 계획도시를 만들고, 개혁과 위민(爲民)사상을 펼치려 했던 정조대왕의 유전자(DNA)가 그것이다. 행정을 하면서 매 순간 정조대왕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한다. 위민정신, 개혁사상, 실사구시와 과학정신을 21세기에 구현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삼성에서 일하면서 ‘니 돈이면 이렇게 하겠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내 돈이라면’이라는 말이 시장으로서 의사결정과 행동의 기준이다.”
수원시 인구(지난해 말 118만 명)가 울산광역시 인구(117만 명)를 추월했다.
“100만 명을 넘어 ‘메가시티’가 된 것은 14년 전인 2002년이다. 이전에는 100만 명 이상이면 광역시가 됐지만 수원시는 광역시는커녕 그에 준하는 어떤 권한도 없다. 기초자치단체 수준으로 경기도에 예속돼 있다. 예산·주민복지비·공무원수·행정조직 규모 등 차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본지 4월 4일자 12면 참조> 인구가 122만 명(외국인을 빼면 118만 명)이지만 행정 수요는 140만~150만 명에 달한다. 인근 용인·화성·오산 등지의 행정 수요가 수원시로 몰려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행정 수요가 크지만 기초지자체로 묶어 놓고 있다. 경기도에서 벗어나려는 것이 아니라 광역시에 준하는 권한과 위상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일본의 정령시(政令市)처럼 특례시(특정시)가 대안이다. 도쿄 인근의 사이타마(埼玉)시는 사이타마현에 속해 있으면서도 상당한 행정 자율성과 독립성을 누린다.”
시민 입장에서 구체적으로 뭐가 문제인가.
“울산시 산하 자치구청은 민선인데, 수원은 30만 명의 인구를 관할하는 구청장이 4급이다. 직급과 현실이 부합하지 않아 피해는 주민들에게 돌아간다. 지난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를 보자. 역학조사원은 경기도에만 2명 있다. 31개 시·군은 시민 생명과 안전이 위급해도 역학조사관을 뽑거나 진단검사조차 바로 할 수 없다. 사실상 시민들이 피해를 본 셈이다.”
시민들의 교통 불편이 크다.
“분당선 완전 개통과 신분당선 연장 개통으로 수원시의 교통체계가 철도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 경부선 서정리역과 수도권 고속철도 평택 지제역을 연결하는 KTX 수원역 출발사업이 성사되면 대전까지 소요 시간을 약 20분 단축할 수 있다. 출퇴근 광역버스 증차는 버스회사의 비용 분담, 정부의 비용 일부 보전, 요금 일부 조정 등 고통 분담으로 풀도록 노력할 것이다.”
지역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화성 행궁(行宮) 외에 볼거리를 늘려야 할 텐데.
“1996년부터 매년 500억원씩 투입해 20년간 1조원을 투입해 수원화성을 복원했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만들었다. 수원화성과 연계된 전통문화 체험시설을 확충해 잠깐 왔다 가는 곳이 아니라 밥이라도 한 끼 먹고 가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화성 축조 220주년을 맞아 10월에 서울 창덕궁을 출발해 수원화성까지 정조대왕 화성행차를 화려하게 재현할 계획이다.”

만난 사람=장세정 지역뉴스 부장, 정리=임명수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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