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누가 얼굴인가? 유권자는 혼란스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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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53곳 지역구와 47명의 비례대표 의원 자리를 놓고 벌이는 국회의원 선거운동은 각 정당의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오케스트라 지휘와 같다. 그런데 지금 주요 3당들의 선거 과정을 보면 그들이 도대체 무슨 곡을 연주하는지, 누가 지휘봉을 잡고 있는지 여간 헷갈리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선거를 지휘하고 있는데 문재인 전 대표가 중간중간 출몰하면서 당 내부에 혼선이 증폭되고 있다. 지난 주말 김 대표는 문재인 전 대표의 호남유세 검토에 대해 “광주 분위기를 보면 안 물어봐도 알지 않겠나. 호남 민심이 더 나빠진다”고 반대했다. 문 전 대표는 “호남 민심이 그러지 않을 것이다. 내가 도움이 된다면 언제든지 가겠다”고 반박했다. 두 사람이 대놓고 공개적으로 충돌한 것이다. 문 전 대표는 한때 당 분열에 책임을 지고 경남 양산 집에 칩거하던 그 모습이 아니다. 그의 빈번해진 공개 행보는 실제로 현장 선거전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듯하다. 오죽하면 그가 손수 영입한 양향자(광주 서을) 후보까지 자신의 거리 유세에서 동영상 중 문재인 장면을 삭제하라고 지시했겠나. 김종인·문재인 두 사람은 그동안 호남 문제뿐 아니라 친노·운동권 패권주의 청산, 북한 정권 붕괴론, 친문재인 인사들의 무더기 비례대표 진입 등에서 정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두 사람이 모두 선거를 지휘하는 형국에서 유권자는 더민주의 본성과 정체성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게 됐다.

새누리당은 김무성 대표와 최경환 의원이 투톱처럼 전국 지원유세에 나서고 있다.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공천 방식, 당과 대통령 관계에 대한 인식 차로 내전(內戰)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권력투쟁을 벌였다. 상대방의 정치생명을 끊어놓겠다는 살기는 어느 순간 공동 유세장에서 함박웃음으로 바뀌었는데 이를 보는 국민들은 그 팔색조 같은 변색이 놀라울 뿐이다. 그러나 이들은 선거 뒤 ‘비박 중심 당 재편’과 ‘박근혜 충성당’이라는 공존할 수 없는 이질성과 상호 적대적인 그림들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국민의당도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의 행태를 보면 새 정치를 하겠다는 건지 호남 지역당을 구축하겠다는 건지 헷갈리기만 한다. 안 대표는 얼마 전 천정배 공동대표가 출마한 광주 서을 지역을 찾아가 엉뚱하게 무소속인 김하중 후보를 만나 사진까지 찍었다. 이러니 벌써부터 안철수 대표가 선거 후 자기 세력을 중심으로 당을 재편한다느니, 천정배 대표가 야권통합론을 명분으로 당을 깰 것이라느니 하는 얘기가 나온다.

정당 선거에서 여러 명의 리더가 팀플레이를 한다면 나무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팀플레이든 스타 흥행이든 지휘자는 한 명이고 하나의 조율된 연주를 해야 한다. 그게 유권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고 원칙이다. 이번에 유권자는 특정 정당을 선택할 때 그 정당이 앞으로 누구 노선을 따를지까지 예측해야 하는 이상한 선거에 직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