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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4월, 스스로에게 잔인하지 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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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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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4월을 며칠 앞둔 어느 오후,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반가운 다섯 글자가 떴다. ‘반드시 투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대 총선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유권자의 63.9%가 ‘반드시 투표할 것’이라고 답했다는 뉴스와 연관된 검색어였다. 지난 19대 총선 당시 여론조사에 비해 7%P 높아졌다는 게 키포인트다. 20~30대 청년층에 힘입은 결과다. ‘반드시 투표할 것’이라는 20대 응답 비율은 4년 전과 비교해 19.3%P, 30대는 12.5%P 더 올랐다고 한다. 이 결과가 맞는다면 이번 총선 투표율은 사상 최저치로 기록된 18대 총선 투표율 46.1%는 물론 19대의 54.2%도 거뜬히 뛰어넘을 기세다.

흥미로운 건 비슷한 기간 여야 모두의 지지율은 추락했다는 사실. 그것도 각자의 텃밭에서다. 리얼미터가 지난달 21~25일 전국 유권자 2522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28일 발표한 여론조사(신뢰도 95%, 표본오차 ±2.0%P) 결과 새누리당은 대구·경북 지역에서 14%P, 더불어민주당은 광주·전라도 지역에서 6.1%P 지지율이 하락하는 굴욕을 맛봤다. 국민이 뿔났다는 증거다. 생각해보면 자업자득이다. 국민의 평가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혼돈의 집안싸움을 생중계하고, 서로를 험담하기에 바빴던 정치인들의 행태는 국민에 대한 갑질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정치 혐오가 투표율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지만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63.9%에게 희망을 걸어본다. 마침 가수 설현(3월 31일자)과 스타 셰프 이연복(1일자)까지 본지 지면을 통해 투표 독려 릴레이 중이니 투표율에 대한 희망은 가져도 되지 않을까.

주변의 20~30대에게도 물어봤다. 대학생 노승희(25)씨는 “내 한 표로 세상을 바꿀 순 없겠지만 내 존재를 알리고는 싶다”고 했고 회사원 이모(28)씨는 “무효표를 찍기 위해서라도 투표할 것”이라고 했다. 익명을 원한 30대 직장인은 대답 대신 총선 사흘 뒤가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4월 16일이라고 상기했다. 당시 고2였던 단원고 학생들이 살아 있다면 올해가 만 19세가 되니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첫 선거가 됐을 거라는 얘기였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시인 TS 엘리엇이 남긴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말은 유독 한국에서 울림이 크다. 하지만 자신의 소중한 권리를 무시하는 건 스스로에게 잔인한 처사일 터다. 윈스턴 처칠은 말했다. “모든 나라의 국민은 그 나라 수준에 맞는 정치인을 갖는다”고.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