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납품하던 훙하이 ‘일본 자존심’ 샤프 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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궈타이밍 회장

일 년을 끌어온 한 편의 드라마가 끝났다. 활짝 웃은 주연은 대만의 최대 부호 궈타이밍(郭台銘·66) 훙하이(鴻海)그룹 회장이다. 일본 전자산업의 자존심인 104년 역사의 샤프를 품에 안았다. 대만 훙하이정밀공업은 30일 이사회를 열고 샤프 인수안을 승인했다고 공시했다. 샤프 역시 이날 주인이 바뀌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두 회사는 “전자업계 리더가 역사적인 전략적 동맹을 맺게 됐다”고 밝혔다.

본토 출신의 야심가 궈타이밍 회장
애플 제품 만들며 성공 가속도
일본 정부 반대 딛고 품에 안아
디스플레이 확보로 사업영역 확대

 훙하이정밀공업은 세계 최대의 ‘공장’으로 불리는 폭스콘의 모회사다.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생산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훙하이정밀은 샤프 주식(보통주 기준)을 주당 88엔에 매입하기로 했다. 샤프의 지분 65.9%를 인수하는 데 들어가는 돈은 3890억 엔(약 3조9800억원)이다.

 궈 회장이 애초 제시했던 4890억엔 보다 1000억엔 가량 줄어든 수치다. 주식인수 대금을 제외한 샤프 투자지원금은 발표되지 않았다. 지원금을 포함해 궈 회장이 처음 제시한 인수가액은 6600억엔이었다. 샤프 주가는 이날 전거래일 대비 3.9% 오른 135엔에 장을 마감했다. 시장의 기대감이 컸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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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심은 이제 궈 회장의 행보로 쏠리고 있다. 샤프 인수로 일본 대표 브랜드를 확보하고, 가전·로봇·디스플레이 사업까지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궈 회장은 중국 본토 출신으로 부모를 따라 대만에 이주해 자랐다. 무역회사를 다니던 그는 수출에 눈을 떠 일 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24살의 나이에 창업을 택했다. 통감절요의 한 대목인 ‘기러기는 천리를 날고, 바다는 백 개의 강에서 물을 받아들인다(鴻飛千里 海納百川)’에서 이름을 따 회사명을 훙하이(鴻海)로 지었다.

 전자부품 조립 생산사업에 뛰어든 그는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이 이어지자 1988년 과감하게 중국 선전에 폭스콘 공장을 지었다. 그의 성공은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 생산으로 가속도가 붙었다. 훙하이정밀의 매출 50%가 애플에서 나올 정도로 애플 의존도가 높자 그는 눈을 돌렸다.

 2014년 최태원(56) SK그룹 회장을 만나 당시 SK의 정보기술(IT) 계열사이자 SK의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SK C&C 지분(약 4.9%)을 샀다. 최근엔 인도에 50억 달러를 투자해 스마트폰 생산을 시작했다. 중국 알리바바, 일본 소프트뱅크와도 손잡고 로봇 합작사를 세우는 등 궈 회장은 거침이 없다.

 그가 샤프 인수에 뛰어든 건 일 년 전이다. 샤프는 ‘원조’라는 자신감이 넘쳐 시장을 잃는 눈이 흐려졌다. TV시장 1위라는 타이틀에 취해 새 시장 개척에 뒤졌다. 결국 디스플레이 사업 적자가 커지면서 샤프는 사업 매각을 검토했다. 궈 회장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곧장 인수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디스플레이 산업 붕괴를 우려한 일본 정부가 민관합작펀드인 산업혁신기구(INCJ)를 만들어 샤프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예기치 않은 경쟁자의 등장에 궈 회장은 팔을 걷어붙였다. 샤프의 주채권은행을 찾아가고, 샤프 이사회 설득에도 공을 들였다. 기자회견까지 자청해 “샤프를 해체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샤프 경영진 교체, 디스플레이 사업 분사, 도시바와 가전사업 합병을 내걸었던 INCJ와는 정반대 행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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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6일 샤프 이사진 13명은 궈 회장의 끈질긴 구애를 만장일치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복병이 나타났다. 협상 11시간 만에 수면 위로 드러난 우발채무였다. 3500억엔에 달하는 우발채무가 불거지자 궈 회장이 한발 빼는 듯 하자 이번엔 샤프가 움직였다. 대만 본사로 직원들을 보내 설득에 들어갔다. 그는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협상을 이어가며 인수대금을 줄였다.주거래은행으로부터 3000억 엔의 융자와 만기가 돌아온 5100억 엔 대출금 상환기간 연장 등도 얻어냈다.

 이제 샤프는 일본 대표 기업이란 타이틀을 내려놓게 됐다. 기계식 연필인 샤프 펜슬(1915년)을 시작으로 일본 최초의 라디오(1925년)와 NHK가 시험방송을 했던 일본 첫 TV(1951년), 세계 최초 벽걸이형 컬러 LCD TV(1991년)를 만든 샤프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이제 ‘뉴 샤프’는 대만 기업의 역사로 이어질 예정이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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