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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코리아 '치킨 게임' 먹구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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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반도체 산업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반도체를 많이 사용하는 정보기술(IT) 기기의 세계 판매가 부진하고 중국·일본·대만 기업들의 도전도 거세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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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주력 품목인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은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약 2년 전 4달러가 넘던 D램(DDR3 4Gb 1600㎒)의 평균 가격은 최근 1.7달러대까지 떨어졌다. 낸드플래시는 최근 하락세가 멈췄지만 추가 인하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말 기준 D램 시장에서 7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낸드플래시 시장에서도 점유율이 40%를 넘었다. 하지만 가격 하락이 지속되면서 제품을 많이 팔아도 손에 쥘 수 있는 이익은 계속 줄고 있다.

공급 늘고 수요 줄며 D램값 2년 만에 반토막
중국, 60조 투자 거센 도전…일본·대만까지 가세
삼성·SK “기술력 앞세워 초격차 전략으로 대응”

 이는 우선 세계적인 경기 위축의 영향이 크다. D램은 PC·스마트폰 등 IT 기기의 이용이 줄면서 수요가 줄고 있다. 낸드플래시는 D램에 비해선 상황이 낫지만 메모리카드·SSD 등 주요 제품의 수요가 감소세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는 올해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가 전년 동기 대비 7.9%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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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 공급과잉 우려는 커지고 있다. 미국 마이크론, 일본 도시바 등이 반도체 경기가 호황이던 2~3년 전 대규모 투자를 했는데 여기서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반도체를 양산한다. 또 올해 반도체 시장의 하향 사이클이 본격화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이달 초 열린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총회에서 박성욱 SK하이닉스 대표와 김기남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사장이 각각 “앞으로 지난 3년간의 호황이 다시 오기 힘들 것” “올해 (시황이) 어렵다. 어려울 때 잘해야 한다”며 위기론을 들고 나온 것도 괜한 엄살이 아니다.

 여기에 ‘반도체 코리아’에 대한 도전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달 일본의 반도체 설계업체 시노킹테크놀로지는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시 정부와 메모리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합의했다. 시노킹은 한때 삼성전자와 어깨를 겨뤘던 ‘엘피다’의 사카모토 유키오 전 대표가 설립했다. 이 회사의 핵심 인력 대부분은 대만 국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설계)·대만(양산)·중국(자본)이 힘을 합쳐 한국을 협공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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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중국의 물량 공세가 위협적이다. 최근 중국의 칭화유니그룹과 XMC가 밝힌 반도체 투자 건은 우리나라 돈으로 60조원이 넘는다. 중국이 메모리반도체 생산을 시작하면 후발 주자이니 만큼 출혈을 감수하며 저가 제품을 쏟아낼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반도체 ‘치킨게임’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시장조사기관 IHS의 렌 젤리넥 애널리스트는 “기존 스마트폰으로 더 이상의 수요를 만들기가 힘들기 때문에 가격 하락세가 지속될 것”이라며 “반도체 시장이 대전환기에 접어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은 가격 하락은 당분간 지속되겠지만 ‘치킨게임’에 대한 우려는 과도하다고 선을 긋고 있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메모리반도체 사업의 특성상 진입장벽이 높고, 시장에 진입한다고 해도 선두권과의 기술격차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이 지금 당장 생산을 시작한다고 해도 18나노 D램과 48단 3D 낸드플래시를 양산하는 한국과의 기술격차가 최소한 2~3년 벌어져 있다.

 메리츠증권 박유악 연구원은 “중국 업체가 현재 제작 중인 낸드플래시는 삼성전자가 2005년 개발한 제품”이라며 “기존 업체와의 기술격차 때문에 중국의 투자가 현재의 업황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중국은 거대한 내수 시장을 확보하고 있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화웨이·샤오미 등 중국 IT기업을 고객사로 확보하면 단시간에 시장 점유율을 늘릴 수 있다. 반도체 산업 육성에 팔을 걷어붙인 중국 정부도 이들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국내 반도체 제조사의 한 최고위급 임원은 “문제는 중국이 한국을 뛰어넘느냐가 아니라 한국의 점유율을 얼마나 빼앗느냐는 것”이라며 “중국이 과거 디스플레이 산업에서처럼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인재를 빼가고, 인수합병(M&A)을 추진하면서 기술 수준을 빠르게 끌어올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고부가가치 제품군을 늘리고 앞선 기술력으로 경쟁사를 따돌리는 이른바 ‘초격차 전략’을 지속한다는 계획이다. 반도체 적층 단계를 높이고, 공정 미세화를 통해 생산단가를 낮추며, 인공지능(AI)·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등 이른바 ‘4차 산업’을 겨냥한 반도체의 비중을 늘려갈 계획이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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