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안 민심, 그들은 차선 변경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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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박민제 기자는 이달 27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직접 택시를 운전하며 민심을 들었다.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승객 양종철씨, 김윤아씨, 익명을 요청한 B씨, 김종건씨. 사진은 취재팀이 택시 내부에 설치한 동영상 카메라에 담긴 영상을 캡처했다. 동영상을 포함해 별도로 제작한 디지털 콘텐트는 모바일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보이스 택싱 바로가기

기사 1명당 연 승객 5409명
민심 듣고 나르는 ‘빅마우스’
26시간 몰았는데 분노만 들려

택시 운전석에서 확인한 민심은 얼어붙어 있었다. 20대 총선의 결말을 예측해 보기 위해 기자가 직접 택시 운전대를 잡았다. 4년 전 취재 목적으로 취득한 택시 운전면허증으로 서울 금천구 소재 오케이택시에 임시근로자로 취업했다. ‘박 기자’에서 ‘박 기사’로 잠시 변신해 총선 민심을 청취하기 위해서다.

택시 운전을 하며 민심을 듣는 이른바 ‘보이스택싱(voice taxing)’은 그렇게 첫 시동을 걸었다. 지난달 2일부터 이달 27일까지 총 네 차례 진행해 26시간 동안 승객 14명을 태우고 생생한 민심을 들었다. 총선이 가까워지면서 성난 민심은 더 격화되고 있었다.

여야가 공천을 마무리 짓고 본격적인 총선 레이스에 돌입한 27일 오후 6시쯤 동작구 신대방동에서 엄보라(33·여)씨가 승차했다.

▶엄씨=“아저씨, 목동요.”

▶박 기사=“어서 오세요, 중앙일보 보이스택싱입니다. 저는 기자인데 총선을 앞두고 민심을 듣는 택시기사로 변신해….”

▶엄씨=“(당황한 표정으로) 아, 기자가 택시 운전을 해요? 뭐 총선 얘기라면 그저 답답할 뿐이에요.”

▶박 기사=“지지 정당 정했나요?”

▶엄씨=“이번에 공천하는 거 보니까 여야 모두 최악의 공천 같아요. 저는 과거 민주당을 지지했는데 이번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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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20대 총선’의 주인공은 ‘민심(民心)’이다. 민심이 총선 드라마의 승자와 패자를 결정짓는다. 전국 25만여 대의 택시를 운전하는 28만 명의 택시기사는 ‘빅 마우스(big mouth)’로 불린다. 선거를 전후해 민심을 실어 나르는 ‘민심 택배’이자 민심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인 셈이다. 실제로 2015년 한 해 동안 서울의 택시기사 한 명이 태운 승객은 5409명(승객 한 명 기준, 승객 2명 이상이면 1만 명 이상), 운행거리는 3만1407㎞였다. 본지가 서울시 택시정보시스템(STIS)을 활용해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다.

택시 운전을 하며 체감한 총선 민심은 싸늘했다. 마치 택시가 차선을 급변경하듯 지지 정당을 바꿨다는 시민이 적잖았다. 특정 정치인을 원색적으로 욕하는 이도 있었다. 지난 2일 지하철 4호선 이수역 앞에서 승차한 김종건(61)씨는 “특정 정당의 문제가 아니라 만날 싸움박질이나 하는 정치판을 아예 싹 바꿔 버려야 한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22일 오후 2시 서울 금천경찰서 앞에서 승차한 김성희(65)씨도 이렇게 꼬집었다. “서민의 아픔을 아는 정치인은 없는 것 같아요. 지난 대선 때는 여당을 지지했지만 이번엔 여든 야든 찍어 줄 사람이 없어요.”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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