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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트럼프의 핵무장 용인 발언은 위험한 단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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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국 공화당의 대선 경선주자 중 선두를 달리는 도널드 트럼프가 주한미군 철수는 물론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용인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뉴욕타임스가 26일 공개한 외교안보 정책 인터뷰에 따르면 트럼프는 “(대통령이 된 뒤) 한·일이 주둔 비용 부담을 상당히 늘리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시킬 것인가”라는 질문에 “즐겁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트럼프는 그동안 한국을 “안보 무임승차국”이라고 비난하긴 했지만 주한미군의 철수 가능성까지 거론한 것은 충격적이다. 동맹의 근간인 신뢰를 흔드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만일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경우 한·미 동맹과 양국 관계가 크게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더구나 트럼프는 “(한·일의) 핵무장에 반대하는가”라는 물음에 “언젠가는 우리가 더는 (방어 역할을) 할 수 없는 시점이 올 것”이라며 “우리는 부유했고 강한 군대와 대단한 능력을 갖췄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고 답해 핵무장 용인을 시사했다. 이러한 발언은 동맹과 안보 질서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한 단견일 뿐이다. 비용 문제로 핵우산 제공을 포기하고 독자 핵무장을 용인한다면 동북아시아의 안보 상황이 더욱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의 핵무장은 군사대국화로 이어지며 이럴 경우 지역 세력 균형이 무너지면서 동북아 안보 질서가 요동치게 된다. 결국 북한과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 핵 대결과 군비 경쟁이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 입장에서는 긴장 고조에 따른 안보비용 증가와 분단 고착화가 우려된다. 한·일 핵무장은 도미노 현상을 불러 핵 비확산 체제가 무너질 수도 있다. 이는 국제사회의 안보 불안을 유발하고 미국의 국익에도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미국의 유력 대선 경선주자가 주한미군과 핵 문제를 비용 차원으로만 접근해 주판알을 튀기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자칫 미국에 대한 전 세계의 불신과 불만만 키울 수 있 다. 트럼프는 소탐대실의 마구잡이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외교 루트를 통해 우리 입장에서 본 트럼프 발언의 위험성을 의회 등 미 지도층에 설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