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첨단 기술 샐라…미, 중국자본 ‘기업 쇼핑’에 브레이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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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급하게 먹은 밥이 체한 걸까. 다국적 기업 사냥에 속도를 올리던 중국 기업이 안팎에서 암초에 부딪혀 주춤하고 있다. 바깥에서는 중국 기업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한 미국 의회와 정부기구의 견제가 본격화하고 있다. 안에서는 과도한 인수 비용으로 인해 중국 기업이 ‘승자의 저주’에 빠질 것을 우려한 규제 당국이 M&A 속도 조절에 나섰다.

반도체 업체 중국 인수 제동 이어
종자업체 신젠타 매각도 신중모드
중국 정부도 과열 우려 속도조절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의회가 중국 국유기업인 중국화공집단공사( 켐차이나)의 신젠타 인수에 제동을 걸었다고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켐차이나는 지난달 스위스 종자·농약업체인 신젠타를 430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 세계 최대의 농약업체이자, 3위의 종자업체인 신젠타를 인수하면 켐차이나의 농약·종자부문 매출(181억 달러)은 세계 2위로 뛰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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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 안보와 직결된 종자 산업의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게 미국은 껄끄럽다. 청크 크래슬리 상원의원은 WSJ과의 인터뷰에서 “켐차이나의 신젠타 인수로 미국 농업 부문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커질 수 있는 만큼 미 농무부 에 이번 인수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중국의 다국적 기업 M&A에 위기감을 드러내고 있다. 규제의 총대를 맨 곳이 미국 정부기구인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다. 재무부와 국토안보국 등 16개 정부 기관이 참여해 미국 내 자산 M&A가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지 결정한다.

CFIUS는 국가안보와 관련된 것으로 간주한 다국적기업의 M&A는 반대했다. CFIUS의 반대로 중국 화롄(華聯)그룹 컨소시엄의 페어차일드 반도체 인수(25억 달러)와 칭화유니(淸華紫光)그룹의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인수(230억 달러) 시도가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이번에도 신젠타의 화학 설비가 전략공군사령부 본부가 있는 미 네브래스카주 오마하 오펏 공군기지 인근에 있고, 신젠타 전체 매출에서 북미지역 비중이 27%에 달하는 것이 부담이다.

중국 정부도 중국 기업의 과도한 ‘ 기업 쇼핑’에 브레이크를 걸 태세다. 우선 안방(安邦)보험의 해외 호텔 체인 인수가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경제주간지 차이신(財新)은 “국내 보험사가 총자산의 15% 이상을 해외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한 관련법 규정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안방보험은 미국 내 16개 고급호텔을 소유한 스트래직 호텔 앤 리조트를 65억 달러에 사기로 했다.

중국 자본에 대한 시장의 거부감도 중국 기업에는 부담이다. 안방보험은 쉐라톤 등 유명 호텔 브랜드를 보유한 스타우드 호텔 앤 리조트 인수전에도 뛰어들어 132억 달러를 전액 현금 지급하는 ‘통큰’ 베팅을 했다. 하지만 매리어트측이 스타우드에 인수 가격을 높인 수정안을 제시하면서 안방보험의 도박은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커졌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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