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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황찬란 伊 콘서트홀 알고보니 공장 리뉴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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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밀라노.베네치아.나폴리.파르마.토리노…. 이탈리아는 오페라 발상지답게 도시마다 유서깊은 오페라극장이 많다. 하지만 오케스트라 단독 공연이 가능한 심포니 전용홀은 별로 없다.

정명훈씨가 수석지휘자로 있는 로마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는 지난해 개관한 파르코 델라 무지카로 옮기기 전까지만 해도 로마시가 바티칸으로부터 사들인 대회의실을 무대로 사용해왔다.

무대 위에 음향 반사판을 설치한 후 오케스트라 공연을 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한여름을 제외하면 연중 무휴로 무대를 사용해야 하고 공연장을 새로 짓자니 도심에는 남아도는 땅이 없다.

그래서 떠오른 대안이 도심 근처의 버려진 공장 건물을 개조해 콘서트홀을 만드는 것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렌조 피아노가 설계를 맡은 파르마 파가니니 음악당(2001)과 토리노 링고토 콘서트홀(1994)이 그 대표적인 예다.

2001년 10월 문을 연 파르마 파가니니 음악당은 1899년부터 1968년까지 에르다니아 설탕공장이 있던 자리였다. 문을 닫은 지 30년이 넘도록 방치됐다가 콘서트홀로 말끔히 새단장했다.

크고 작은 여러 개의 건물 중 가장 큰 공장 건물에 무대와 객석을 배치하고 부속 건물엔 연습실이 들어서 있다. 길이 90m짜리 건물의 좁은 벽면을 완전히 헐어낸 후 유리 벽면으로 칸막이를 해 계단과 로비, 객석과 무대를 1자형으로 연결했다.

건물의 규격이 구두상자 모양의 전통적인 콘서트홀 건축 양식에 적합했기 때문에 공장 건물을 헐지 않았다. 아름드리 나무로 둘러싸인 공원 내에 위치해 별다른 방음 시설을 할 필요도 없었다.

로비로 연결되는 공원 입구로 들어서면 마치 양쪽 벽면과 지붕만 남은 거대한 터널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다. 연주 도중에도 뻥뚫린 유리 창문 너머 공원과 잔디밭이 한눈에 들어온다.

리카르도 무티 지휘의 스칼라 극장 오케스트라가 개관 공연을 한 파가니니 음악당의 객석은 모두 7백80석. 2백50㎡ 넓이의 무대는 대규모 오케스트라.합창단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크다. 현지 음악관계자들은 왕립 오페라 극장과 함께 파가니니 음악당을 파르마의 자랑거리로 손꼽았다.

렌조 피아노의 공장 개조 작업은 10년 전 이탈리아 북서부의 공업도시 토리노에서도 찬사를 받았다. 1994년 5월 이탈리아의 대표적 자동차 메이커 피아트사의 토리노 공장 자리에 들어선 링고토 콘서트홀이다.

1920년대에 조업을 시작해 80여종의 자동차를 생산해 온 이 곳은 축구장 10개를 합친 크기. 한때 1만2천여명의 근로자들을 수용했던 ,산업도시 토리노의 상징이었다.

1983년 공장이 폐쇄된 직후 건축 공모전을 실시했고 기차역.자동차박물관.호텔 등 단일 목적으로 쓰자는 의견도 많았으나 렌조 피아노의 다목적 문화 단지안이 통과됐다. 박람회장, 대학캠퍼스, 호텔, 영화관, 쇼핑센터, 창업 지원단지가 속속 들어섰다. 토리노 북페어, 자동차 쇼도 이곳에서 열린다.

2천석짜리 회의실 겸용 콘서트홀은 중정(中廷) 연못 지하에 들어서 있다. 천장에 부착된 목재 패널이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회의.음악회 등 용도에 따라 잔향시간을 조절한다.

신축 공연장을 도시 외곽의 공터에 짓지 않고 가능하면 도심 가까이에 두려는 이유는 뭘까. 교통이 불편한 공연장은 관객이 외면한다는 진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서울시내에 공연장을 신축한다면 부지 확보가 어렵다고 산허리를 잘라낼 게 아니라 오히려 도심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최근 경방이 본사 소재지인 영등포 공장을 폐쇄하고 2008년까지 호텔.오피스텔.쇼핑센터 등을 짓기로 결정했다. 서울시가 이곳 공장 건물 몇 동을 사들여 건물의 뼈대를 그대로 둔채 음악당으로 개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파르마=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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