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새누리 색깔 뺀 현수막 앞서 “정든 집 잠시 떠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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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유승민(대구 동을) 의원이 23일 밤 대구시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유 의원은 이 자리에서 “저는 오늘 헌법에 의지한 채 오랜 정든 집을 잠시 떠나려 한다. 그리고 정의를 위해 출마하겠다”고 말했다. 유 의원 뒤 새로 설치한 현수막에 새누리당 로고가 빠져 있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4·13 총선 후보 등록 시작을 1시간 앞둔 23일 오후 11시 유승민 의원이 대구 선거사무소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 섰다. 24일 0시 이후엔 무소속으로 출마할 수 없게 한 선거법 규정 때문이다. 공직선거법은 후보 등록기간(24~25일)에 당적을 이탈한 사람은 무소속 출마를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 의원, 작년처럼 헌법 인용하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와
작년 대표연설, 당 정강 안 어긋나”

“사랑하는 당원 동지 여러분”이란 말로 회견을 시작한 그는 역설적으로 ‘당원 동지’들과의 이별을 선언했다. 그러면서 “정의를 위해 출마하겠다”며 “저의 정든 집을 잠시 떠난다. 권력이 저를 버려도 국민만 보고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헌법도 인용했다. 유 의원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2항을 들며 “어떤 권력도 국민을 이길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7월 원내대표 사퇴 연설에서도 헌법 1조2항을 인용했었다.

이날 유 의원의 탈당 선언문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공천에서 탈락한 의원들과의 연대 의사를 밝힌 점이다. 이종훈·조해진·권은희·김희국·류성걸 의원 등이다. 이들은 공천관리위원회의 결정으로 컷오프(공천배제)된 상태다. 유 의원은 “저와 뜻을 같이했다는 이유로 경선 기회조차 박탈당한 동지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며 “그들과 함께 당으로 돌아와 보수 개혁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뜨거운 지지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앞서 칩거 8일 만인 이날 오후 3시 대구 대명동에 있는 어머니 강옥성(87) 여사 자택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 시간쯤 머문 뒤 자택으로 이동해 공천위의 회의 결과를 기다렸다. 오후 10시 공천위가 “내일(24일) 오전 회의를 다시 열겠다”며 끝내 공천 여부를 결정하지 않자 1㎞ 거리에 있는 사무소를 찾아 기자회견을 했다.

회견문을 읽은 연단 뒤 ‘대구의 힘! 대구의 미래!’라는 현수막의 바탕색은 이미 새누리당의 빨강이 아닌 흰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유 의원은 회견에서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한 공천면접 이야기를 꺼냈다. 면접에서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지난해 4월 유 의원이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다”는 발언을 언급하며 ‘당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유 의원은 “그 연설을 몇 번을 다시 읽어봐도 당의 정강정책에 어긋난 내용은 없었다”며 “오히려 당의 정강정책은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를 추구하는 저의 노선이 옳다고 말해준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정체성 시비는 저와 함께한 의원들을 쫓아내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며 “공천을 주도한 그들에겐 친박·비박 편가르기만 있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지지자들이 “유승민”을 연호하는 가운데 연단에서 내려온 유 의원은 기자들과의 문답을 피한 채 곧바로 사무소를 떠났다. 대신 유 의원은 보좌진을 통해 새누리당 대구시당에 탈당 서류를 접수시켰다. 탈당 시한(24일 0시)을 불과 30분 남기고서다. 시당 위원장인 류성걸 의원은 이 시간까지 사무소 문을 열고 접수를 기다렸다.

유 의원과 같은 지역구(동을)에서 경선에 대비해온 이재만 전 동구청장 측은 “우린 탈당을 하지 않고 공천위의 24일 결정을 기다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무성 대표 측은 “만일 공천위가 유 의원 지역구에 이재만 전 대구동구청장을 공천한다면 김 대표가 공천장에 도장을 안 찍어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고 말했다. 김 대표가 지금껏 의결을 보류하고 있는 대구동갑(정종섭 후보 단수추천) 등에 대해서도 ‘직인 거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대구=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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