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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밴드·댄스·시 공연…끼 펼칠 무대 내준 이한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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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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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타워즈’의 ‘광선검’을 연상시키는 조명 도구를 든 ‘요기가’ 이한주 대표. 실험음악 공연 등에 사용하는 무대 소품이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빌딩 지하에 자리 잡은 ‘요기가 표현갤러리’는 어수선했다. “어제 공연이 늦게 끝난 데다 이사 때문에 짐을 정리하는 중”이라며 이한주(46) 대표가 머쓱해했다. 4월 초로 예정된 ‘요기가’의 이전을 앞두고, 요즘 이곳에는 매일 크고 작은 공연이 이어진다. 합정동의 상징적인 공간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밤마다 객석을 가득 메운다.

‘요기가 표현갤러리’ 대표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공연장
뮤지션 돕는 펀딩도 준비 중

‘요기가’는 개성 있는 공간이 넘쳐나는 홍익대 인근에서도 그만큼 특별한 공간이었다. 예술가들의 작업실이면서 갤러리, 라이브 공연장이자 소극장이었다. 홍익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웹·영상 디자이너로 일하던 이 대표가 “예술가와 관객, 예술가와 예술가가 작품으로 교류하는 공간”을 희망하며 2004년 서교동에 ‘요기가 실험가게’를 차린 것이 시작이었다.

작품을 선보일 공간을 찾기 힘든 젊은 예술가들을 위해 가게 안에 작은 상자를 마련해 ‘미니 전시공간’을 임대했다. 2006년 합정동으로 옮겨 오픈한 ‘요기가 표현갤러리’는 ‘누구라도,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는 곳’이 모토였다. 실험음악가이기도 한 이 대표가 직접 참여하는 ‘불가사리’ 음악회는 한국 전위음악의 저변을 넓히는 역할을 했다. 인디밴드의 라이브 공연은 물론 시낭송, 연기, 댄스 퍼포먼스 등 무대를 원하는 누구에게나 공간을 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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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는 프로와 아마추어가 없다. 기타를 들면 누구나 기타리스트”라는 게 이 대표의 신념이다. 또 “여러 사람이 같은 목표를 향해 움직이면 변화는 찾아온다”고 믿는다고 했다.

이를 위해 다시 한번 도약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4월부터는 요기가 예술가게, 요기가 실험갤러리에 이은 세 번째 ‘요기가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마포구 망원동에 예술가들의 공동작업실인 ‘요기가 망원경’을 열고, 그동안 해오던 불가사리 음악회 등은 홍익대 앞 다른 공연장을 빌려 계속 진행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누구도 생각지 못한 독특한 프로젝트를 꿈꾸고 있다. “사람들이 잘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의 삶을 지원하는” 실험이다. 얼마 전 인천 강화도로 거주지를 옮긴 이 대표가 직접 실험 대상으로 나서 ‘이한주를 유지해주세요’ 프로젝트를 펼친다.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로부터 월 5000원에서 5만원의 펀딩을 받고 웹디자인, 영상 제작, 레코딩, 공연 기획 등 자신이 가진 재능을 그들에게 제공한다는 발상이다. “놀고 먹자는 게 아니라, 네트워크를 이용해 서로가 서로에게 기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보고 싶은 거죠.”

 뮤지션들을 월정액으로 지원하는 온라인 프로젝트 ‘요기가 오디오’도 오픈을 앞두고 있다. 단지 음원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술가의 삶 자체를 지원해 좋은 작업물을 만들어낼 수 있게 돕고, 거기서 나오는 수익을 함께 나누자는 것이다. “너무 이상적인 것 아닌가요”라고 묻는 기자에게 이 대표는 눈을 빛내며 답했다. “이상을 계속 이야기하면 현실이 될 수 있어요. 내가 내놓은 대안이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줘 또 다른 움직임을 만들어내게 될 테니까요.”

글=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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