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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직원에겐 인기, 가족에겐 상처···내 유머가 어때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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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Q. (딸한테 농담하니 무시하지 말래요) 직장생활 20년 차의 40대 후반 남성입니다. 제 성격이 외향적이라 어떤 모임이든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편입니다. 또 모임이나 직장에서 분위기를 좋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스타일이고요. 그래서인지 나름 사회생활 잘한다는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업무적으로도 인정받고 있고요. 그런데 얼마 전 여동생이 내 말로 인해 오랫동안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당황했습니다. 처음엔 여동생이 너무 예민한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우리 둘 사이를 중재하던 다른 동생도 ‘형은 속마음과는 다르게 다른 사람한테 상처를 주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며칠 전에는 고등학생 딸로부터 ‘아빠는 농담이라고 하는 말이 남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요.

분위기 메이커라는 40대 후반 직장인

A. (회사에선 부하들이 맞춰준 건지도) 나쁜 의도 없이 상대방을 재미있게 하려고 한 말이 오히려 상대방에게 상처가 된다면 내 마음도 너무 속상할 수밖에 없죠. 사연 내용을 보면 직장생활에서 소통할 때는 그렇지 않은데 가족 간 소통에서 이런 갈등이 생기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직장생활에서 쓰는 소통법을 그대로 가정에서 쓰는 것이 문제의 원인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직장 경력 20년이면 직장생활은 달인의 경지라 여겨집니다. 사회생활 잘한다는 이야기도 들으시고요. 그런데 가정에선 내가 건네는 농담에 친동생과 딸이 상처를 받는다니 황당하셨을 겁니다.

오늘 사연과 꼭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회사생활 하신 분 중에 본의 아니게 모임을 썰렁하게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특히 직책이 높은 분에게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죠. 예를 들면 회사의 임원인 A씨는 자신의 유머 수준은 코미디언 이경규 수준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회식에서 자기가 말을 던질 때마다 수많은 직원들이 쓰러질 듯 웃어주기 때문이죠. 그런데 일과 상관없는 동호회 모임에 가서 이야기하니 반응이 썰렁하고 심지어는 사람들이 함께 식사하는 것을 피하기까지 합니다. ‘이 사람들 유머 감각이 없네’라고 스스로 위안할 수 있지만 사실은 본인의 소통 감각이 떨어진 겁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어도 직원들이 웃어주는 환경에 있다 보니 생긴 일입니다.

감 찾으려면 먼저 잘 들어야

다시 오늘 사연으로 돌아가 보면 어떤 이유든 소통 감각이 떨어졌을 때 자기에게 문제가 있는 것조차 모르는 분도 많은데, 오늘 사연 주신 분은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 느끼시니 반은 해결된 것이네요. 본인은 분위기를 좋게 하려고 농담처럼 던진 이야기가 가족들에게 오히려 상처가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내 위치가 높아 직원들이 예의 차원에서 계속 웃어주다 보니 소통 감각이 떨어진 것일 수 있고, 그 회사에서의 소통 스타일 자체가 거칠고 강해도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일반적으로 쓰이는 소통 스타일이 집에서는 잘 맞지 않는 것이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일단 내 소통 감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면 문제의 반은 해결된 것입니다. 내가 남을 괴롭히고 있는지도 모르고 계속 같은 스타일로 대화를 리드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보통 농담을 하면서 분위기를 좋게 하려는 건 모임을 잘 이끌어 나가려는 조정 욕구가 있는 것입니다. 이 욕구는 나쁜 것은 전혀 아닙니다. 리더십이 있는 것이고 대화를 잘 이끌어 나가려는 긍정적인 목적을 가진 것이니깐요. 그런데 소통 감각이 떨어진 상태에서는 이 욕구를 잠시 눌러줄 필요가 있습니다. 소통 감각이란 상대방의 마음을 잘 읽는 것이죠. 내가 이런 말을 할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잘 예측하는 것이고요. 그런데 소통 감각 없이 리드해 나가면 대화의 결과가 좋지 않게 됩니다.

소통 감각을 다시 찾기 위해서는 다소 수동적인 자세로 잘 경청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유머에서도 웃기려 하는 것보다는 잘 웃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내 마음은 어떻게 반응하는지 다른 사람은 어떤 감정 반응을 보이는지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감성적인 특징도 보이고 이 모임에서 소통 스타일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도 느껴지게 됩니다.

그다음엔 수동적인 자세에서 조금 벗어나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긍정적으로 반응하면서 열린 질문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열린 질문은 상대방이 내게 관심이 있다고 느끼게 해줘서 내 속마음을 더 말하게끔 합니다. 열린 질문은 그 자체로 상대방에게 공감받고 있다는 만족감을 주고 상대방이 자신의 마음을 열고 이야기해 상대방에 대한 정보도 더 얻어낼 수 있습니다. 정보를 더 아는 만큼 더 깊은 대화가 가능해집니다.

이미 상처를 가진 가족은 방어적이기에 한 번에 그 상처가 풀릴 거라고 기대하기보다 꾸준히 열린 소통을 하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02 “이거 해” 대신 “이건 어때”

Q.  (여동생은 내 조언이 불쾌하대요) 내 소통 스타일을 되짚어 보니 사람들이 나와 대화를 할 때 이 사람이 나를 분석하고 있구나 하는 기분이 들어 불쾌해진 경험이 있다고들 합니다. 예를 들면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하는데 ‘너 같은 성격은 이걸 선택하면 안 될 거야’ 같은 말에 상처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사람을 나름 전부터 잘 알고 있고 그 생각을 바탕으로 해주는 조언인데 듣는 쪽에서는 불편했나 봅니다. 여동생이 ‘오빠 앞에서는 행동이나 말을 신경 쓰게 되어 피곤했다’고 하더군요. 소통 관련 책을 보니 같은 조언도 ‘네가 지금 어떤 상태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건 어때’라는 말은 상대방을 똑같이 분석하는 것이면서도 이해를 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고 하는데 상대방을 분석하는 느낌을 주는 말과 이해하는 느낌을 주는 말은 매우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 같습니다. 그 차이점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A. (지시받으면 누구나 기분 나빠요) 대화를 할 때 닫힌 문장을 쓰는 것과 열린 질문을 사용하는 건 상대방에게 주는 느낌이 다릅니다. ‘너 같은 성격은 이걸 선택하면 안 돼’란 말은 닫힌 문장이죠. 닫힌 문장은 직선적인 조언을 담고 있습니다. 이런 대화법을 직면적 소통이라고 합니다. 내 주장을 강하게 이야기해 상대방의 생각이나 행동에 영향을 주는 대화법이죠. 대화의 내용 자체는 상대방을 위하는 것이라도 직면적 소통은 상대방의 자유에 대한 욕구를 제한하는 느낌을 줘 저항을 일으키기 쉽습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선 잔소리가 되고 나에게 좋은 이야기인데도 청개구리처럼 거꾸로 행동하고 싶은 욕구까지 생기죠. 사람은 누군가 나의 자유를 억압할 때 나를 무시한다는 감정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네가 지금 이런 상태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니’는 열린 질문 소통이죠. 조언이 들어 있지만 지시하는 형태가 아닌 묻는 형태이고 결정권을 상대방에게 주는 모양새라서 상대방의 자유를 억압해 나오는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이런 소통을 동기부여 소통법이라고도 합니다. 사람은 스스로 결정할 때 강한 동기부여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닫힌 대화를 하는 건 아닌지 살펴보고 열린 대화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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