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당신을 좋아해요…체 게바라도 환영했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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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빗속 아바나 거닐며 역사적 방문 시작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미 대통령으로서는 88년 만에 쿠바 땅을 밟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날 아바나 공항에서 차에 오르기 전 환호하는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바나 공항에 도착하기 전 트위터 계정에 스페인어로 “¿Que bolá Cuba?(쿠바 잘 지냈습니까?)”라는 글을 올렸다. 쿠바인들은 이날 빗속에 수도 아바나의 구시가지를 관광하는 오바마 대통령을 보고 “USA”를 외치며 환영했다. 그는 2박3일간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의장과의 정상회담, 미·쿠바 야구대표팀 친선경기 관람 등의 일정을 소화한다. 미국은 단교 54년 만인 지난해 쿠바와 재수교했다. [아바나 신화=뉴시스]

88년 만에 쿠바 땅을 밟은 미국 대통령을 쿠바인들은 열렬히 환영했다.

아바나 시민들 “USA” 외치며 환호
오바마, 우산 들고 구도심 관광
미셸과 두 딸, 장모까지 동행

20일 오후(현지시간) 대통령 전용기(에어포스 원)를 타고 입국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찾은 국제적 관광지 아바나의 구시가지.

비가 내리는 포석이 깔린 스페인풍 거리에 우산을 받쳐 쓴 오바마 일행이 나타나자 경찰의 통제 속에 멀찍이 떨어져 있던 쿠바인들이 “USA” “오바마”를 외쳤다. 한 남성은 “쿠바 방문을 환영합니다. 당신을 좋아해요”라고 소리쳤고, 건물 발코니에 나온 한 여성은 오바마 일행에게 박수를 쳤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이에 손을 들어 인사하는 노타이 차림의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환호가 이어졌다. NYT는 “오바마 대통령이 도착했던 이날 호텔 바부터 가정집에 이르기까지 도시 곳곳에서 오바마 얘기가 계속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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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일가가 20일(현지시간) 아바나 구시가지를 관광하고 있다 . 앞줄 왼쪽부터 둘째 딸 사샤, 장모 매리언 로빈슨, 부인 미셸 여사, 오바마 대통령, 큰 딸 말리아. [아바나 AP=뉴시스]

쿠바와의 우호관계를 새로 만들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아바나 2박3일은 ‘1호 가족’의 관광으로 시작됐다. 구시가지 관광에는 미셸 여사와 딸 말리아·사샤는 물론이고 장모 매리언 로빈슨까지 동행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쿠바의 미국대사관 직원들을 만나 “1928년 캘빈 쿨리지 대통령이 쿠바에 왔을 때 전함을 타고 사흘이 걸렸지만 이번에는 3시간 만에 왔다”며 “에어포스 원이 쿠바에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과거보다 더 밝은 미래를 위한 비전을 만들고 쿠바 국민과 직접 접촉하며 양국 국민의 새로운 연대를 만드는 역사적 방문이자 기회”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앞서 아바나 공항에 도착하기 직전 쿠바식 스페인어로 “쿠바 잘 지냈습니까?(¿Que bolá Cuba?·케 볼라 쿠바?)”라는 소감을 트위터에 올린 뒤 “방금 도착했다. 쿠바 국민을 만나 직접 얘기 듣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썼다. 쿠바 방문단에는 미국 상·하원 의원 40여 명과 제록스·페이팔 등의 기업인 10여 명, 메이저리그 최초 흑인 야구선수 재키 로빈슨의 유족이 포함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21일 쿠바 독립 영웅인 호세 마르티의 기념비에 헌화한 뒤 아바나 혁명궁전에서 열리는 공식 환영행사에 참석했다. 이어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과 정상회담을 했다. 쿠바 외무부의 미국 담당관인 호세피나 비달은 “(쿠바 혁명을 도운) 체 게바라가 살아 있었다면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을) 환영했을 것”이라고 CNN에 밝혔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체 게바라는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과 함께 쿠바 혁명을 성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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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여성 경찰들이 정치범 석방을 촉구하는 ‘백의의 여성들’ 회원을 연행하고 있다. [AP=뉴시스]

그러나 쿠바 정부의 반체제 인사 단속은 오히려 강화됐다.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 수시간 전 아바나 시내에서 열리던 인권단체 ‘백의의 여성들’의 반정부 시위는 경찰의 봉쇄로 중단됐다. 정치범의 가족들인 여성 시위대는 전단을 뿌리다 현장에서 체포돼 버스에 실려 갔다. 22일 미국·쿠바의 친선야구 경기는 당국이 사전에 지정한 인사들에게만 관람이 허용된다.

쿠바 국영 언론사의 한 기자는 “2주 전 소셜미디어에 오바마 대통령과 관련된 어떤 글도 올리지 말고 외국 언론도 접촉하지 말라고 지시받았다”며 NYT에 정부의 언론 검열을 귀띔했다. 쿠바 당국은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지 일대 도로를 재포장하고 시가지와 야구장에 페인트를 칠하며 대대적인 단장 작업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에 맞춰 철통 경계도 계속됐다. 현지의 정호현 한·쿠바교류협회 협력실장은 “시내 곳곳에서 차량 통행을 전면 차단해 도보로만 다니도록 했다. 미국 대통령이 오니 거리가 한산해졌다”고 말했다. 쿠바 당국은 21일부터 시내 일부 건물의 출입을 막아 현지에 진출해 있는 KOTRA도 사무실을 비운다고 다른 인사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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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게스

◆“ 금수 없어져야 진짜 관계 정상화”=쿠바 방송 총괄 국영기관인 ‘쿠바 라디오·TV기구(ICRT)’ 부사장을 역임한 오마르 올라사발 로드리게스 아바나 예술대 교수는 20일 e메일 인터뷰에서 “ 외교관계는 복원됐지만 실질적인 정상화가 이뤄지려면 미국의 대쿠바 금수조치가 해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쿠바 내 미군기지인) 관타나모 반환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고 말했다.

로드리게스 교수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건강하면서도 교육을 받은 쿠바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의 외교관계 복원으로 관광객이 크게 증가했는데 이는 쿠바 방문에 두려움을 느꼈던 이들이 걱정을 덜게 됐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어 “(관광객 급증으로) 호텔 예약이 대단히 어려워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기분 좋은 얘기”라고 말했다. 그는 “양국의 미래는 더 개선되리라 희망한다. 실질적인 관계 정상화는 양국 국민 모두에게 득이 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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