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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처럼 줄 맞추던 한국 무용수들, 창의적 변신 놀라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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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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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무용단 ‘시간의 나이’ 중 한 장면. 왼쪽은 송지영, 오른쪽과 영상 속 무용수는 박혜지. [사진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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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불 수교 130주년 기념 ‘한·불 상호 교류의 해’ 문화행사의 하나로 23일 개막하는 국립무용단의 ‘시간의 나이’. 27일까지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뒤 6월에는 프랑스 파리에서도 선보인다. 전통의 재해석을 통해 한국춤의 현대화·세계화를 제시할 것으로 기대되는 공연이다. 특히 무용팬의 눈길을 잡는 건 바로 안무가, 조세 몽탈보(64·작은 사진)다.

국립무용단 초빙 안무가 몽탈보
한국춤 매력은 숨겨진 관능미
23~27일 ‘시간의 나이’ 무대에

몽탈보는 콧대 높고 취향 까다롭다는 파리 관객에게도 믿고 보는 안무가 1순위로 꼽힌다. 몽탈보 안무작이라는 이유만으로, 6월 ‘시간의 나이’ 파리 공연은 이미 매진된 상태다. 그는 2000년부터 무려 16년째 프랑스 사요 국립극장의 무용감독·상임안무가 등으로 활동해왔다. 현장에서 체득한 감을 즉흥적으로 반영해 온 천재 안무가이건만 이번엔 두 달 전부터 들어와 ‘한국적인 것’을 탐구해왔다. 그에게 한국춤은 어떤 질감일까. 언론 시사회가 열렸던 18일 그를 만났다.

한국춤 인상이 어땠나.
“예전부터 세계 각국의 전통춤을 활용한 공동작업을 해왔다. 플라멩코라면 치마 걷어붙이고 남성을 유혹한다. 직접적이고 적극적이다. 반면 한국 춤은 그렇지 않았다. 부드럽고 섬세했다. 보일 듯 말 듯 움직이며 사뿐사뿐 걷는 춤새가 보는 이를 당기게 했다. 숨겨진 관능미, 내가 내린 결론이다.”
국립무용단과의 작업은.
“처음엔 군대 같았다. 횡과 열을 맞춰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게 있는 듯했다. 나는 무용수의 개별 동작까진 짜지 않는다. 각 무용수가 자기에게 맞는 움직임을 만들어 오면 그걸 조합하고 방향을 제시할 뿐이다. 그런 방식을 무척 낯설어했다. ‘왜 당신이 동작을 안 만들고, 우리에게 떠넘기느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서였을까.”
그렇게 두 달이 지난 현재의 평가는.
“놀라운 적응력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동작의 발상도 신선하고, 이음새 논리도 탁월하다. 특히 몇몇의 안무 실력은 당장 해외에 나가도 손색이 없을 만큼 창의적이다. 한번 틀을 깨니 마음껏 자신의 역량을 보였다. 왜 K-컬처에 세계가 주목하는지 조금 이해가 갔다.”
특히 어떤 점에 주목했나.
“음악적 역량이다. 단원들이 춤을 추면서 소고춤·장구춤·오고무 등 타악 연주를 했다. 무용수이자 뮤지션이라는 건 놀라운 재능이다. 춤사위 하나하나에 깊은 맛이 배어있어 오래된 역사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뿌리를 지키려는 본능만큼 낯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심 역시 강했다. 과거와 미래가 묘하게 공존했다.”
비키니 입은 여성이 영상으로 등장한다.
“억압된 여성성의 해방, 현대화 상징 등의 의미로 비키니를 활용했다. 영상과 무대의 유기적 연결성은 내가 오랫동안 추구해 온 연출법이다. 관객에게 닫힌 무대가 활짝 열리는 새로운 체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여성이 양반춤을, 남성이 부채춤을 춘다.
“춤의 남녀 구별을 둔다는 것도 고정관념이다. 어색하던가. 현대무용이라고 과거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는 싫다. 이번 공연도 전통미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무작정 관습을 따르진 않을 것이다. 지금껏 한국인도 포착하지 못했던 숨겨진 아름다움을 제시하고 싶다. 이방인의 눈으로 본 한국춤의 재발견, 그게 목표다.”

◆국립무용단 ‘시간의 나이’=23일∼27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평일 오후 8시, 토·일 오후 3시. 2만∼7만원. 02-2280-4114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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