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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먼저 날 쳐라’ 공천위 ‘먼저 나가라’ 무언의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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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칩거하고 있는 새누리당 유승민(사진) 의원과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위원장 이한구)가 17일 ‘침묵의 줄다리기’를 계속했다. 유 의원은 이날 대구 동구 용계동 자택이나 인근 선거사무소가 아닌 제3의 장소에 머물면서 외부와의 접촉을 끊었다. 전날엔 외박을 했고, 지난 15일에 들렀던 남구 대명동의 어머니 강옥성(87) 여사 자택도 방문하지 않았다. 방송사 카메라가 강 여사 자택 앞으로 몰려들었으나 대문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유 의원실은 “유 의원이 집에 들르면 취재진이 몰려와 다른 주민에게 방해가 되므로 한동안 다른 곳에 머물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유승민, 집도 안 들어가고 장고
측근은 “공천위가 다음 수 둬야”

용계동 선거사무소 직원들은 유 의원의 거취를 묻는 전화에 온종일 시달렸다. 직원들은 “의원님이 나오지 않으셔서 모르겠다. 저희도 ‘무소속으로 출마할 수도 있다’는 기사를 보고서 내용을 파악하고 있다”는 대답을 반복했다.

서울 여의도 당사에 꾸려진 공천위는 이날도 유 의원의 거취를 결정하지 않았다. 공천위는 침묵의 대치 상태를 장기전으로 끌고 가는 논의도 진행하고 있다. 공천위 관계자는 “지금 유 의원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 의원의 자진 불출마 또는 탈당 선언을 기다리면서 ‘무언의 압박’을 가하고 있는 셈이다. 여당 내에선 "유 의원에게 스스로 떠나라는 의사가 전달됐다”는 말도 돌았다.

하지만 유 의원은 공천위 결정에 앞서 탈당을 선언하거나 측근 의원 컷오프(공천배제)에 대한 비판 성명 등을 내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유 의원의 한 측근은 “우리가 먼저 ‘중대 결심’을 발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침묵으로 대응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으니, 다음 수는 공천위가 둬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공천위가 유 의원을 컷오프시킬 경우 무소속 출마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고 측근들은 말했다.

유 원내대표 시절 원내수석부대표를 맡았던 조해진 의원을 비롯해 원내대변인 출신의 이종훈 의원, 대구 지역의 친유승민계 권은희·김희국·류성걸·홍지만 의원을 콕 찍어 낙천시킨 상황에서 유 의원마저 컷오프된다면 ‘유승민 탄압’에 대한 동정 여론이 만들어질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다만 공천위가 유 의원을 이른바 ‘진박’ 후보인 이재만 전 동구청장과 경선에 부친다면 응한다는 기본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측근들은 말했다. 엄기홍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유 의원의 세력 결집은 어려워졌지만 공천위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본인의 경쟁력 자체는 올라갈 것으로 본다”며 “무소속으로 출마하더라도 이 전 청장과 근소한 격차로 이길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유 의원 본인이 탈당을 먼저 결정하면 친박계의 탄압을 받는다는 이미지는 흐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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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선 유 의원이 불출마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유 의원 혼자 20대 국회에 입성하더라도 자기만의 세력을 결집하긴 어려운 상황이 됐다”며 “불출마를 선언해 ‘억울한 결정이지만 당을 위해 받아들인다’는 의미를 부각하는 데 성공한다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이른바 ‘탈박’ 시대가 왔을 때 다시 거물로 중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익명을 원한 측근 의원은 "유 의원은 자진 탈당하지 않고 공천을 받아 후일을 도모하길 가장 원한다”며 "혹시라도 친박과 당 지도부 사이에 유 의원을 대상으로 한 ‘정치적 거래’가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대구=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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