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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세 고집하는 나라 공통점은 ‘독주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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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29개국은 가격이 아니라 알코올 도수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종량세를 채택하고 있다. 도수가 높은 술일수록 세금을 많이 물리는 종량세는 술 소비를 억제하는 ‘제어판’ 역할을 한다. 독한 술을 많이 마실수록 세금을 더 내야 하기 때문이다. 종량세를 통해 도수가 낮은 순한 술 중심으로 적게 마시게 유도하자는 인식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뿌리 깊게 박혀 있다.

OECD 29개국 종량세 채택

OECD 회원국 가운데 종량세에 반기를 든 나라는 단 5개국뿐이다. 멕시코·터키·칠레·이스라엘 그리고 한국이다. 종량세 대신 술의 가격에 따라 세금을 붙이는 종가세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은 주정(에탄올 성분으로 술의 원료)에만 ㎘당 5만7000원의 종량세를 적용할 뿐 나머지 모든 주류에 종가세를 적용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종가세를 시행하고 있는 5개 국가의 공통점은 전통주의 성격에 있다. 한국에선 소주, 멕시코에선 ‘테킬라’, 터키에선 ‘라크’, 칠레에선 ‘피스코’ 등 도수가 높은 술이 전통주로 자리 잡았다. 고도주(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 중심의 전통주 시장이 세금 때문에 위축되는 일을 막으려 종가세를 고수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선 서민주로 자리 잡은 소주 가격 인상을 우려해 종가세를 유지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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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독주를 전통주로 가졌지만 종량세를 채택한 국가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스카치’의 본산인 영국(스코틀랜드)이다. 전통주 보호보다는 국민 건강을 앞세운 셈이다. ‘쇼주’나 ‘사케’처럼 도수가 비교적 높은 전통주를 둔 일본도 1990년 주세 체계를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전환했다. 도수가 높은 술에 불리한 종량세를 시행한다고 해서 관련 산업이 가라앉은 전례도 찾기 힘들다.

김완배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한국과 비슷한 시기에 위스키 개발을 시작한 일본의 현재 위스키 자급률은 70%가 넘는다”며 “고급 술 개발을 막는 종가세를 일찌감치 폐지하고 자국산 술에 과감한 세제 특혜를 준 정책이 주류 자급률을 높이는 지렛대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종가세(從價稅)와 종량세(從量稅)=술에 세금을 부과하는 두 가지 방식이다. 종가세는 술의 가격(제조원가와 판매비용×세율)에 따라, 종량세는 알코올 도수(알코올 용량×도수·㎘당 세액)에 따라 세금을 부과한다. 예컨대 도수와 용량이 같은 100만원짜리 와인, 1만원짜리 와인 두 병이 있다고 하자, 종가세에선 두 와인에 붙는 세금이 100배가량 차이가 난다. 반대로 종량세를 적용하면 세금이 똑같다.

특별취재팀=박상주·조현숙·이태경·하남현·김민상·이현택·장원석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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