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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속으로

오늘의 논점 -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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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중앙일보 <2016년 2월 24일자 30면>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불가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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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 발효된 이래 첫 직권상정 케이스가 발생했다. 어제 정의화 국회의장이 테러방지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한 것이다. 국회선진화법은 여야 합의 없는 안건의 처리를 극도로 어렵게 하고 있어 19대 국회를 무능·무력한 식물국회로 만든 주범으로 지적돼 왔다.

정 의장은 “IS(이슬람국가)는 이미 우리나라를 십자군 동맹국, 악마의 연합국으로 지목하며 테러 대상국임을 공언해 왔고 최근 북한은 국가 기간시설에 대한 테러, 사이버 테러 등 대남 테러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며 “국민 안위와 공공의 안녕질서가 심각한 위험에 직면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지금 상황을 국가 테러가 일어날 수 있는 국가 비상사태로 본 것이다.

테러방지법안은 2001년 김대중 정부가 제출한 이래 15년 동안 국회에서 계류와 폐기, 상정을 반복해 왔다. 유엔은 9·11사건 이후 테러 근절을 위한 국제 공조를 결의하고 이를 위한 법령 제정을 각국에 권고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부분이 테러 방지를 위한 법률을 제정한 상태다.

그동안 국가정보기관의 권한 확대가 인권 훼손, 시민의 사생활 침해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에 야당이 반대해 온 건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지난해 파리 테러에서 보듯 세계적으로 연결되고 기술적으로 첨단화하며 잔혹성이 더해가는 사악한 집단의 조직적 테러를 과거와 같은 방법으로 대처할 수 없게 된 것도 사실이다. 테러방지법안은 테러 용의자에 대한 정보수집권을 국가정보원에 부여하는 것과 함께 국민의 기본권 침해 방지를 위해 대테러인권보호관을 두는 등의 제동장치도 마련하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되더라도 국정원에 대한 민주적 통제·감시는 더욱 강화돼야 할 것이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이 이 법안이 통과되면 국가 권력이 국정원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것이기에 자기들이 영원히 집권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다. 야당은 오히려 자신들이 집권할 경우를 대비해 국정원의 정보 능력 향상이라는 관점도 중시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을 유의하면 현실적으로 여야 합의가 불가능한 테러방지법안을 국회의장 책임으로 직권상정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본다.

한겨레 <2016년 2월 24일자 31면>
헌정 위협한 국정원에 칼 넘겨준 ‘테러방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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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에 지금보다 훨씬 큰 권한을 주는 것을 뼈대로 하는 테러방지법이 23일 국회의장 직권상정으로 본회의에 넘겨졌다. 정의화 국회의장과 여당이 안보 비상사태라며 야당의 반대를 뿌리치고 절차도 건너뛰며 밀어붙인 결과다. 정작 테러 방지의 실효성은 의심되는데, 국정원의 정치 개입과 민주주의·인권 위협 가능성은 한층 커졌다. 개혁의 대상이어야 할 국정원이 테러 위험을 핑계로 되레 힘을 부풀린 ‘괴물’로 되돌아온 것이다.

테러방지법 제정이 오롯이 국정원의 권한과 기능 강화로 이어질 것은 분명하다. 민주화 진전으로 존재 의의를 의심받게 된 국정원이 테러 위험을 내세워 권력의 유지를 시도한 지는 꽤 오래됐다. 이번 법 제정에도 핵실험 이후 북한의 테러 위협이 명분이 됐다. 하지만 국정원이 흘린 정보 외에 북한이 실제 테러를 준비한다는 구체적인 근거는 공개된 게 전혀 없다. 만약의 테러 가능성에 대한 대비도 지금의 시스템과 법규로 충분하다. 지금 상황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려우니 직권상정 요건도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여당은 국정원에 지금 당장 무차별적인 정보수집권과 감청권, 조사권을 주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국가비상사태가 올 것처럼 기만하고 겁박하고 있다. 여야 합의의 원칙을 무시한 이런 초법적인 시도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테러방지법의 내용은 더욱 우려스럽다. 법안이 그동안의 여야 협상을 반영했다지만 시늉일 뿐, 위험은 그대로다. 애초 국정원에 두기로 한 대테러방지기구를 국무총리 산하로 옮겨 위원회 형태로 뒀다지만, 위원회는 기획·조정 업무만 맡을 뿐이다. 통신비밀 수집과 감청, 계좌 추적과 금융거래 정지 요청, 출입국 정보 수집 등 실질적인 권한은 국정원장이 쥔다. 인터넷상 글에 대한 긴급삭제 요청, 테러 위험이 있는 내·외국인 출국금지 등 다른 목적으로 악용될 수도 있는 권한도 주어졌다.

그렇게 국정원의 권한이 넓어진 데 반해 이를 감시하고 통제할 장치는 턱없이 빈약하다. 국정원의 탈법 행위를 감시하기 위한 인권보호관을 두기로 했다지만, 실제 어느 정도 구실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권한에 맞춤한 견제를 받지 않는 조직이 오염되고 일탈하기 쉽다는 것은 국정원의 지난 역사가 웅변한다. 테러방지법의 날치기 처리는 그런 민주주의 파괴의 역사로 되돌아가겠다는 것이다.

논리 vs 논리
<중앙> 국내외 테러 대응책 시급 vs <한겨레> 위협 부풀려 민주주의 파괴

<단계1> 공통 주제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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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방지법에 반대해 야당이 지난달 23일 시작한 필리버스터가 지난 2일까지 192시간 계속됐다. 두 번째 주자로 나선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현재 테러방지법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데 이어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법 제정안 공포안을 의결한 상태지만 이 글은 국회의장 직권상정 당시 관련 사설을 대상으로 쓰여졌다는 점을 먼저 밝혀둔다. 2월 23일 정의화 국회의장이 테러방지법안을 국회 본회의에 직권상정했다. 2012년 국회선진화법이 발효된 이래 첫 직권상정 사례였다. 정 의장은 새누리당 발의 법안을 국가비상사태를 사유로 본회의에 올린 것이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장시간 연설로 법안 의결을 막는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절차인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으로 맞섰다. 정 의장은 "IS(이슬람국가)는 이미 우리나라를 십자군 동맹국, 악마의 연합국으로 지목하며 테러 대상국임을 공언해 왔고 최근 북한은 국가 기간시설에 대한 테러, 사이버 테러 등 대남 테러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는 말로 현재 상황을 국가 테러가 발생할 수 있는 국가 비상사태로 본 것이다. 반면에 야당은 실제 이 법의 효과는 의심되면서도 국민의 인권과 자유를 훼손할 우려가 크다는 점을 들어 강력 반대하고 있다. 특히 이 법이 테러 의심 인물에 대해 출입국과 금융거래 및 통신 이용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한 것을 문제 삼으면서 국가정보원이 테러에 연루됐다고 의심하기만 하면 그 누구든 전방위적 감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렇듯 찬반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에 대해 중앙과 한겨레 사설은 분명한 입장 차를 나타냈다.

<단계2> 문제 접근의 시각차

 중앙은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불가피했다’는 사설 제목에서부터 분명한 찬성 입장을 나타낸 반면, 한겨레는 ‘헌정 위협한 국정원에 칼 넘겨준 테러방지법’이란 사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확실한 반대 입장을 천명했다. 중앙은 일단 ‘국회선진화법이 안건의 처리를 극도로 어렵게 하고 있어 19대 국회를 무능·무력한 식물국회로 만든 주범’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테러방지법안은 이미 2001년 김대중 정부가 제출한 이래 15년 동안 국회에서 계류와 폐기, 상정을 반복해 왔음을 강조함으로써 직권상정의 정당성을 찾고 있다. 유엔이 9·11사건 이후 테러 근절을 위한 국제 공조를 결의하고 이를 위한 법령 제정을 각국에 권고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부분이 테러 방지를 위한 법률을 제정한 상태라는 점도 덧붙이고 있다. 이에 반해 한겨레는 테러방지법이 오롯이 국정원의 권한과 기능 강화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민주화 진전으로 존재 의의를 의심받게 된 국정원이 테러 위험을 내세워 권력의 유지를 시도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이번 법 제정의 명분으로 삼고 있는 북한의 테러 위협도 지금의 시스템과 법규로 충분히 대비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지금 상황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가 아니어서 직권상정 요건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단계3> 시각차가 나온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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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직권상정에 대한 의견 차와 함께 테러방지법의 내용 자체에 대한 두 신문의 시각차도 분명하다. 중앙의 경우 ‘그동안 국가정보기관의 권한 확대가 인권 훼손, 시민의 사생활 침해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에 야당이 반대해 온 건 이해할 만한 일’이지만 현재 국내외 테러 위협 상황의 엄중성을 감안하면 이 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파리 테러 사태를 예로 들면서 첨단화하고 잔혹성이 더해 가는 조직적 테러를 과거와 같은 방법으로는 대처할 수 없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테러방지법안은 테러용의자에 대한 정보수집권을 국가정보원에 부여하는 것과 함께 국민의 기본권 침해 방지를 위해 대테러인권보호관을 두는 등 제동장치를 마련하고 있다는 점도 덧붙이고 있다. 반면에 한겨레는 ‘테러방지법의 내용이 그동안의 여야 협상을 반영했다지만 시늉일 뿐, 위험은 그대로다’는 주장이다. 애초 국정원에 두기로 한 대테러방지기구를 국무총리 산하로 옮겨 위원회 형태로 뒀다지만 위원회는 기획·조정 업무만 맡을 뿐 통신비밀 수집과 감청, 계좌 추적과 금융거래 정지 요청, 출입국 정보 수집 등 실질적인 권한은 여전히 국정원에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인터넷상 글에 대한 긴급삭제 요청, 테러 위험이 있는 내·외국인 출국금지 등 다른 목적으로 악용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결국 중앙은 현실적으로 여야 합의가 불가능한 테러방지법안을 국회의장 책임으로 직권상정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보는 반면, 한겨레는 국정원의 지난 역사가 견제를 받지 않는 조직의 오염과 일탈 사례를 웅변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분명히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김기태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