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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안한 듯한 스타일링으로 배우 내면의 아름다움 끌어내야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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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9호 24면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핫’한 여배우 단 한 명을 꼽자면, 두말할 나위 없이(26)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작품 선택의 폭, 한 번도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빼어난 연기력, 시원시원하고도 털털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솔직한 언행까지. 그야말로 수퍼 스타의 모든 조건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들어서는 ‘스타일 아이콘’으로까지 거듭났다. 무슨 옷이건 멋지게 소화하는 몸매와 한껏 물이 오른 ‘여신 미모’ 덕이다. 지난달 28일 열린 제 88회 아카데미 시상식과 애프터 파티에서도는 디올 오트 쿠튀르 드레스와 알렉산더 왕 투피스로 가장 많은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제니퍼 로렌스

제니퍼 로렌스가 할리우드 ‘뷰티 퀸’ 자리를 차지한 데는 한인 1.5세 헤어 스타일리스트 제니 조(40)의 공이 컸다. 이전까지 늘 어중간한 헤어 스타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의 이미지를 3년 전부터 180도 변신시킨 게, 바로 제니 조의 솜씨다. 그는 미국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셀러브리티 헤어 스타일리스트로 유명하다.뿐 아니라 제시카 차스테인, 나오미 와츠, 다코타 패닝, 에밀리아 클라크, 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 커스틴 던스트 등이 모두 그의 단골이다. 아만다 사이프리드와는 알아주는 ‘절친’이고, 캐리 멀리건의 결혼식 때는 들러리까지 선 사이다. 제니 조의 인스타그램(@jennychohair)은 미국 ‘인스타일’ 매거진이 ‘강추’하는 ‘머스트 팔로우 인스타 계정’으로도 유명하다. 세계적 톱스타들의 헤어 스타일을 책임지는 여자 제니 조를 만나 할리우드 스타 스타일링의 뒷이야기를 들었다.

할리우드 배우들을 상대하는 헤어 스타일리스트는 주로 어떤 일을 하나. “시상식 레드 카펫을 비롯한 각종 행사, 영화 프로모션, 인터뷰, 광고 사진 촬영 등이 있을 때마다 클라이언트 배우들의 헤어 스타일링을 담당한다. 숍에 소속돼 있는 것은 아니고, 전담 에이전트가 스케줄을 관리해준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헤어 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 아티스트, 네일 아티스트, 의상 스타일리스트 등만을 따로 관리하는 에이전시가 많다. 시상식 시즌엔 LA에서 주로 일하지만, 영화 프로모션차 프레스 투어를 다닐 때는 배우들과 똑같은 스케줄로 매일같이 뉴욕·파리·런던·두바이·베이징 등을 오간다. 보통 어시스턴트와 함께 클라이언트의 집이나 호텔 방으로 가서 스타일링을 한다. 때문에 차 안엔 각종 헤어 용품이나 부분 가발 같은 것들로 가득 차 있는 큰 여행가방이 항상 준비돼 있다. 가끔 나 자신을 ‘헤어 스타일리스트 온 휠즈(찾아가는 헤어 스타일리스트·Hair stylist on wheels)’라고 부른다. 그만큼 바쁘게 다닌다는 뜻이다.”


이번 아카데미상을 끝으로 2016 시상식 시즌도 마무리됐다. 얼마나 바빴나. “올해는, 시얼샤 로넌, 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 등을 주로 맡았다. 예전엔 클라이언트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일정을 쪼개고 쪼개 시상식 당일 하루 3명까지 맡았던 적이 있는데, 이젠 아무리 많아도 2명까지만 맡으려 한다. 내가 정신이 없고 조바심을 내면 배우들에게도 그 불안감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아카데미 시상식 날에는에게만 집중했다. 시상식 당일은 여배우들에게 결혼식이나 마찬가지다. 굉장히 예민하기 때문에 걱정을 덜 수 있도록 안정감 있게 곁에 있어주는 게 중요하다.”


시상식 스타일링은 어떻게 준비하나. “완벽한 ‘협동’ 시스템이다. 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 아티스트, 그리고 나까지 연관된 모두가 끊임없이 의견을 교환한다. 배우 본인도 적극적으로 원하는 바를 이야기하지만, 대부분 우리를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라’고 지시하는 법은 절대 없다. 드레스가 가장 중요한 데, 보통 1주일 전에는 결정을 마쳐서 이에 맞춰 메이크업과 헤어를 준비한다.”


유명 헤어 스타일리스트의 경우 시상식 시즌엔 하루 수천 달러 이상을?번다고 알려져 있는데. “매번 다르다. 배우의 인기나 유명세에 따라서도 차이가 난다. 시상식이나 프레스 투어 등 영화와 관련된 행사의 경우, 스타일링 비용은 전적으로 스튜디오가 지불한다. 나를 찾는 건 배우들의 선택이지만, 결국 작품 홍보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영화사 예산에서 모든 게 커버된다. 클라이언트에게 직접 스타일링 비용을 받은 적은 거의 없다. 사실 수입에 관한 부분은 에이전시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다른 유명 헤어 스타일리스트들 중엔 특정 헤어 제품과 계약을 맺거나 자기 이름을 내건 헤어 라인을 제작해 부가 수입을 올리는 이들도 많다.”


최근엔의 거의 모든 헤어 스타일링을 담당하고 있다. “3년 전쯤 상한 머리를 싹둑 자르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나를 찾았다. 그간 캐리 멀리건을 비롯해 짧은 머리 스타일링을 많이 해 왔는데 그걸 인상깊게 본 모양이다. 에이전시 담당자와 서로 이런저런 사진을 보여줘 가며 제니퍼만의 스타일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내 눈에 보인 제니퍼의 이미지는 ‘시크’였다. 그래서 섹시하고 엣지있지만 동시에 딱히 꾸미지 않은 듯한 편안한 스타일을 추구했다. 꼭 헤어 스타일 때문이라기 보단 그 사이 커리어도 탄탄해지고 자신감도 붙으면서 제니퍼의 미모가 점점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워낙 재치있고 유머러스한 성격이라 같이 일하는 게 아주 즐겁다.”


얼마 전 사진가 애니 레보비츠가 찍은 매거진 ‘배니티 페어’ 커버 촬영 때도 직접의 헤어를 담당했는데. “큰 영광이었다. 패션 화보 촬영 때는 보통 전담팀이 헤어나 메이크업을 담당하는데 어느 정도 경력과 실력을 인정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2012년 11월 엔터테인먼트 전문지 ‘할리우드 리포터(Hollywood Reporter)’ 뷰티 특집호에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함께 지면을 장식한 제니 조(왼쪽).

자연스러운 스타일링이 당신만의 특기로 알려져 있다. “아무것도 안 한 듯한 스타일링을 좋아한다. ‘오가닉’한 느낌이랄까. 영감도 주로 거리의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얻는다. 난 내 클라이언트가 빛나길 원하지, 헤어만 보이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 나도 아티스트다. 내가 추구하는 뚜렷한 의견과 방향이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팀워크다. 헤어 스타일만 예쁘게 나온다고 아름다워 보이고 화면이나 사진에 멋지게 나오는 건 아니다. 배우나 모델이 원하는 모습, 그들이 가장 행복하고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스타일, 사진가의 비전을 가장 정확하게 눈 앞에 펼쳐지도록 만들어주는 것이야말로 뛰어난 헤어 스타일리스트의 덕목이다. 너무 유행에 민감하게 따라가는 것도 각별히 경계한다. 대신 배우가 가진 내면의 아름다움을 끌어내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기 위해 최대한 클라이언트와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다.”


까다로운 여배우들 때문에 곤란한 경우는 없었나. “집을 오가며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사이인데다 프레스 투어를 다니면 1~2주 가량 매일같이 붙어다니다 보니 친구를 넘어 가족 같은 사이가 된다. 대신 여기저기서 배우들 이름을 팔고 다니거나 SNS에 그들이 원치 않는 사진을 올리고 뜬 소문을 떠드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같이 다니는 어시스턴트에게도 에티켓 교육을 철저히 시킨다. 그래서인지 다들 나를 ‘안전하다’고 느끼는 듯하다.”


어떻게 헤어 스타일리스트가 됐나. “어려서부터 인형 머리 땋는 게 취미였다. 고등학교 때도 틈만 나면 친구들 머리를 만져줬다. 졸업 파티 때는 친구들이 내 앞에 길게 줄을 설 정도였다. 어머니와 함께 한인 미용실에 갈 때면 디자이너 분께 온갖 것을 꼬치꼬치 묻곤 했는데, 그분이 ‘헤어 아카데미에 가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추천해주셨다. 원래 공부에도 큰 관심이 없던 터라 19살에 부모님께 1만 달러를 빌려 비달 사순 아카데미에 들어갔는데 너무나 즐겁고 적성에도 잘 맞았다. 9개월 만에 졸업하자마자 강사 자리를 제안받아 LA 비달 사순 아카데미에서 3년, 뉴욕의 헤어 브랜드 ‘범블 앤드 범블’에서 2년간 교육 관련 일을 했다. 20대 후반에 다시 LA에 돌아와 수십 군데 에이전시에 포트폴리오를 돌리고 발품을 판 끝에 제시카 심슨 등을 스타일링한 유명 헤어 디자이너 켄 페이버스의 어시스턴트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곧 돌을 앞둔 아이가 있다. 엄마가 되고 보니 삶의 우선 순위가 가족으로 옮겨 가더라. 하지만 여전히 일하는 게 즐겁고 매번 신이 난다. 에이전트나 클라이언트들도 엄마가 된 내 상황을 이해해줘서 앞으로도 일과 가정의 균형을 잘 맞춰갈 수 있을 듯하다. 유명하기만 한 헤어 스타일리스트가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돈이나 명예만 쫓고 싶지도 않다. 그보다는 헤어 스타일리스트나 비슷한 분야의 아티스트가 되길 꿈꾸는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싶다.” ●


LA(미국) 글 LA 중앙일보 이경민 기자 lee.rachel@koreadaily.com, 사진 제니 조·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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