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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공동 황제, 기근·전쟁 책임 나눠 진 ‘두 개의 태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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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9호 28면

서기 161년 3월 7일 로마 황제로 함께 즉위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왼쪽)와 루키우스 베루스. 대영박물관 소장 조각.

지금으로부터 꼭 1855년 전인 161년 3월 7일(율리우스력), 마르쿠스 아일리우스 아우렐리우스 베루스 카이사르(이하 마르쿠스)가 제16대 로마 황제에 취임했다. 혈통에 의해 세습된 황제들은 평가가 나빴던 반면에 혈통과 관계없이 지명된 다섯 황제는 좋았다고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언급한 이른바 ‘오현제(五賢帝)’의 마지막 황제다.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가 사망했을 때 원로원은 마르쿠스를 단독 황제로 옹립하려 했다. 이에 마르쿠스는 혼자 황제가 되지 않고 자신처럼 전임 황제의 양자인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아우렐리우스 코모두스(이하 루키우스) 또한 동등한 권력을 가져야만 황제직을 수락하겠다고 했다. 결국 원로원은 루키우스에게 임페리움·호민관·아우구스투스 호칭 등을 수여했다. 마르쿠스보다는 작은 권력이었다. 그리하여 마르쿠스는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으로, 루키우스는 카이사르 아우렐리우스 베루스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으로 최초의 공동 황제가 되었고, 두 사람의 관계는 ‘형님 먼저, 아우 먼저’의 관계였다. 물론 루키우스가 마르쿠스에게 독살됐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실제 그랬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늘 아래 태양이 둘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공동 황제는 매우 낯선 제도다. 특히 마르쿠스가 단독으로 황제가 될 수 있었는데 남과 권력을 나누려고 한 것은 조그마한 감투에도 양보 없이 목숨 걸고 쟁취하려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다. 권력지향적인 사람들은 대체로 감투라는 권력에만 관심을 갖고, 감투에 따라오는 책임에는 무관심하다. 이와 달리 감투를 주저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권한보다 책임의 막중함을 더 느낀다.

2 디오클레티아누스를 비롯한 4인의 공동 로마 황제가 서로를 껴안고 있는 조각상(4세기 제작, 현재 베니스 소재). 당시 로마의 권력 경쟁은 황제 간의 싸움이 아니었다.

로마 황제의 권력에는 책임이 따랐다. 당시 로마는 홍수 등의 자연 재해로 기근이 발생했고 이민족들의 국경 침범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난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이 황제에게 있었다. 마르쿠스와 루키우스 모두 전쟁을 무척 싫어했다. 마르쿠스는 자신에게 지워질 부담을 나누고 싶어 했다. 루키우스는 공동 황제로 취임하자 군인들 급여를 대폭 인상한 뒤 자기 집 금고의 돈으로 이를 지급했고, 전쟁의 현장에도 출동했다. 마르쿠스와 루키우스의 치세 동안 로마는 황제를 풍자한 희극이 공연될 정도로 언론의 자유를 만끽했다.


마르쿠스와 루키우스 이후에도 공동 로마 황제는 여러 차례 등장했다.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전반에 걸친 테트라키아(4두체제)처럼 공동 황제가 4명인 때도 있었다. 공동 황제 체제는 양보의 미덕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통치였을까. 공동 황제 간의 관계는 다양했다. 한 공동 황제가 다른 공동 황제를 암살하여 단독 황제로 즉위한 사례도 있고, 또 공동 황제끼리 결속하여 군부나 원로원을 견제한 사례도 있다. 마르쿠스와 루키우스의 공동 황제 체제는 서로 싸우지도, 또 다른 세력으로부터 위협받지도 않은 거의 유일한 사례다. 마르쿠스가 말년에 공동 황제로 옹립한 자신의 아들 코모두스조차 마르쿠스의 사후에 실정을 거듭하다 교살되고 말았다.


공동 황제 체제는 당시 로마 제국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 기여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로마 제국의 부흥을 가져다 주지는 못했다. 로마 제국이 이미 쇠퇴의 길로 접어든 시대에 등장한 공동 황제 체제는 그만큼 불안정한 체제임을 자인하는 것이었다.

1 외젠 들라크루아가 그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유언’(1844년 작). 아들이자 공동 황제인 코모두스(오른쪽 붉은 토가)는 다른 참석자와 달리 마르쿠스의 유언을 심각하게 듣지 않는 모습이다. 이런 코모두스의 자세는 곧 닥칠 로마의 쇠퇴를 암시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흔한 일오늘날 민주주의에서 권력 나누기는 흔하다. 의원내각제 국가에서 어떤 정당도 의회 다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을 때 몇몇의 정당이 연합하여 연립내각을 구성하고 권력을 나눈다. 또 이원집정부제 국가에서 대통령직과 내각을 서로 다른 정당이 장악하면 자연스럽게 권력이 분점 된다. 다수제 성격의 대통령제 국가에서도 의회가 여소야대일 때 권력이 분점 되기도 한다. 대통령제처럼 입법부와 행정부가 분립되는 체제에서도 연립정부(연정)가 시도된다.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 제안은 실현되지 못했고,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연정은 성사되었다. ‘경기도 연합정치 실현을 위한 정책합의문’에 따라 사회통합 부지사를 도지사 소속 정당이 아닌 다른 정당에서 맡는 방식이다.


민주주의 이론가들은 종종 권력 분점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 않음을 지적하고 공화정의 민주주의가 과대평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고대 플라톤이 주창한 철인정치도 그런 맥락에서이고 197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케네스 애로의 ‘민주주의 불가능성 정리’도 마찬가지다. 애로는 5가지 민주주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의사결정방식이 존재하지 않음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바 있다.


애로가 말한 5가지 민주주의 조건은 ①어떤 후보끼리도, 어떤 정책 대안끼리도 경쟁될 수 있어야 하고, ②그 경쟁의 결과는 제3의 후보나 정책 대안이 있고 없음에 따라 달라지지 않아야 하며(X와 Y 가운데 선택하는 결정은 Z가 있고 없음에 따라 바뀌지 않아야 함), ③후보나 정책 대안 간의 우열관계는 순환되지 않아야 하고(X와 Y 가운데 Y로 결정하고, 또 Y와 Z 가운데 Z로 결정한다면 X와 Z 가운데에서는 Z로 결정해야 함), ④전원이 더 선호하는 후보나 정책 대안은 그렇지 않은 대안보다 우선적으로 선택되어야 하며(X가 어느 누구에게도 Y보다 나쁘지 않다면 어떤 경우에도 Y로 결정해서는 아니 됨), ⑤집단의 결정이 특정 개인의 선호와 늘 일치해서는 아니 된다는 5가지다.


애로의 증명은 다수결과 만장일치제를 포함한 그 어떤 방식도 ①, ②, ③, ④의 4가지 민주주의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려면 선호가 집단의 결정과 늘 일치하는 개인(독재자)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쿠스와 루키우스의 공동 황제정은 마르쿠스의 선호와 로마 제국의 결정을 일치시킴으로써 그 네 가지 조건을 나름 충족시켰다고 볼 수 있다.


애로의 정리는 독재자가 존재하면 ①~④의 민주주의 조건이 잘 충족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독재자의 선호는 대체로 즉흥적이고 스스로 모순되기 때문에 국가 정책 또한 순환적이고 제3의 대안에 따라 뒤바뀐다.


독재자는 흔히 다수의 의견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독단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자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실제 다수의 지지 없이 밀어붙이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단순 다수의 의견과 반대로 밀어붙이는 독재보다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독재는 단순 단수의 지지를 바탕으로 전체의 뜻을 왜곡하는 경우다. 히틀러가 대표적인 사례다. 특정 시기의 단순 다수에 편승해서 그 특정 시기 소수와 다른 시기 다수의 의사를 깡그리 무시했기 때문에 독재자로 불렸다. 소수의 지지에 기반을 둔 독재자야 다수에게서 조금씩 재화를 박탈하여 소수의 지지 집단을 먹여 살리기 때문에 다수 집단의 개인으로서는 큰 희생이 아닐 때도 있다. 반면에 다수의 지지에 기반을 둔 독재자가 다수에게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공공재적 정책을 추진하는 것 대신에 소수에게서 많은 재화를 박탈하게 되면 소수는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공화정 경험한 로마였기에 가능애로가 말하는 독재자는 오히려 플라톤이 말하는 철인에 가깝다. 자기가 독점할 수 있는 권력을 남에게 나누는 것은 관조적 가치관이 없으면 행하기 어려운 정치적 행위다. 마르쿠스의 『명상록』은 마르쿠스가 그런 관조적 가치관을 지녔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어떤 면에서는 로마가 황제정 이전에 공화정을 경험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중국 등 다른 지역의 왕정에서는 관찰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권력 분점의 성공은 파트너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지분에 대해 쌍방의 의견이 같다면 큰 문제가 없다. 권력욕이 적당하면 별 문제가 없는데 끝이 없을 때에는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무능하지만 욕심이 무한한 자는 문제를 일으킨다. 특히 권력자 스스로 유능하다고 생각해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실제 권력욕은 겉으로는 보이는 것과 다를 때가 많다. 권력욕이 없는 것으로 인식되어 권력을 가질 수 있었던 자가 추후에 권력을 휘두른 사례들이 많다. 권력 분점이 성공하려면 권력자가 관조적이어야 한다.


권력 분점 자체는 여러 한계를 지닌다. 서로 대치하는 권력 분점은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나눠먹기 식으로 정한 결과가 특정 결과보다 모두에게 못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독재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 독재는 더 큰 문제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권력이 분점 되어 있더라도 국가 정책은 지도자의 합리적이고 일관된 원칙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결과적으로 더 나은 민주주의를 가져다 준다.


국가뿐 아니라 정당도 마찬가지다. 4월 총선이 한 달여 밖에 남지 않은 요즘, 정당마다 공천을 둘러싼 당내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한편은 공천 전권(全權)을 받았거나 혹은 달라고 요구하고 있고, 상대편은 사심(私心) 공천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의 권력 분점에다 ‘형님’의 철학적 독재를 가미할 수만 있다면 그 정당은 대외 경쟁력 그리고 구성원 만족도를 모두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김재한한림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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