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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에게 공감 못하는 기업 이구아나 수준의 뇌 가진 셈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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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9호 32면

저자: 데브 팻나이크 역자: 주철범 출판사: 이상 가격: 1만5000원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역대 최저 수준의 자국 시장 점유율을 보여주고 있지만 디트로이트에서만은 예외다. 그곳의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는 차들은 포드ㆍ제너럴모터스ㆍ크라이슬러가 만든 차들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도요타 캠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기 힘들다. 이유가 뭘까.


이곳 사람들은 큰 폭의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복지제도 덕분에 남들보다 저렴하게 차를 구입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해당 브랜드를 계속 이용하게 됐다. 하지만 이같은 보호막이 없는 진짜 시장에서는 이들이 애용하던 모델은 선택되지 않았고,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었다. 거대한 유리상자 안에 갇혀 있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왜곡된 상황과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정보만 제공되니 계속해서 그릇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일들은 도처에서 일어난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소비자에 대한 많은 정보를 모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를 멀찍이 떨어뜨려 놓고 있다.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서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컨설팅 회사 점프 어소시에이츠의 대표인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은 간단하다.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 즉 공감 능력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가장 모범적인 방법은 생산자가 곧 소비자가 되는 것. 일례로 할리 데이비슨을 보자. 본사 주차장엔 ‘오토바이만 주차 가능’이라고 쓰여 있다. 고위급 임원들을 위해 자리를 비워놓는 게 아니다. 오토바이를 몰아본 사람들만 알 수 있는 주차의 서러움을 달래면서 이곳이 바로 오토바이족의 성지임을 분명히 한다.


나이키나 넷플릭스도 마찬가지다. 근무시간에 회사 주변에서 조깅을 한다거나 자사 VOD 서비스를 이용해 드라마를 본다고 해서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그들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로 그들이 되고, 그들이 곧 우리가 되는 순간, ‘우리 고객들은 무엇을 원할까’ 머리를 싸매고 고민할 필요는 사라지는 것이다.


너무 단순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저자가 제시하는 사례들을 읽다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스탠퍼드대에서 ‘니드 파인딩’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는 학생들에게 ‘가죽구두 프로젝트’를 과제로 내준다. “상대방의 구두를 신고 1마일을 걷기 전까지 절대로 그 사람을 섣불리 판단하지 말라”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속담처럼 실제로 자신이 알고자 하는 사람의 상황에 처하게 하는 것이다.


저자 역시 같은 기숙사에 살던 친구를 이해하기 위해 휠체어 생활을 한 적이 있다. 바퀴를 굴릴 때마다 손이 미끄러지면서 브레이크에 긁히고, 상처가 채 낫기도 전에 새로운 상처가 생기는 걸 보면서 그는 확신했다. “이 휠체어를 만든 사람은 자신이 만든 휠체어를 타 본 적이 없음이 분명하다!” 만약 한 번이라도 휠체어를 타고 외출해 봤다면 어떤 점을 고쳐야 하는지 바로 깨달았을 테니 말이다. 이처럼 친밀감과 일체감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대부분의 기업은 이구아나 수준의 뇌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부분에선 웃음이 피식 나온다. 시각과 촉각, 온도 등 기본적인 감각들로부터 정보를 모으는 파충류의 뇌로는 생존에 필요한 부분밖에 알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다 높은 수준의 지적 사고를 담당하는 신피질과 기억과 감정을 관장하는 변연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역시 답은 멀리 있지 않다. 자기 보호에만 관심 가진 동물에서 벗어나 최소한 상대방의 행동을 지켜보며 그 아픔에 똑같이 반응하고 기쁨에 함께 즐거워하는 거울 신경을 회복하면 된다. 혁신에 목마른 자들에게 고하노니, 일단 공감하라. 그리하면 단순한 정보에 생명력이 생겨날지니.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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