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금지 풀어달라' 제 발로 경찰서 찾아온 사기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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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 결제기(POS)를 해킹해 복제카드를 만든 뒤 사용하다 중국으로 달아났던 20대 남성이 8개월 만에 붙잡혔다. 이 남성은 자신이 수배된 사실도 모르고 '출국금지를 풀어달라'고 경찰에 연락했다가 검거됐다.

인천 남부경찰서는 4일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및 사기 혐의로 박모(24)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박씨는 복제카드를 이용해 지난해 7월 4~8일에 강원도 원주와 경기도 안산 등의 금은방과 골프용품점 13곳에서 3252만원 상당의 물품을 구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중국에 있는 조직에서 국내 식당 등의 신용카드 단말기를 해킹해 복제카드를 만들어 건네면 전국을 돌며 금과 골프용품을 구입했다. 이후 이를 장물업자에게 넘겨 현금화 한 뒤 중국에 있는 조직에 보냈다.

그러나 지난해 7~8월 범행 내용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경찰이 대대적인 수사에 나서자 놀란 박씨는 중국으로 도주했다. 지난해 8~9월 장물업자와 일부 공범이 붙잡혀 구속되는 등 수사가 끝났다고 판단한 박씨는 지난해 12월 몰래 국내로 돌아왔다.

하지만 당시 경찰은 박씨의 신원을 파악해 지명수배를 하고 법무부에 출국금지까지 신청한 상태였다. 이런 사실을 몰랐던 박씨는 출입금지 통지서를 받자 법무부에 문의를 했다. 또 자신을 지명수배한 인천남부경찰서 연락해 "왜 내가 출국금지 된 것이냐?"고 따지기도 했다.

박씨의 연락을 받은 경찰은 "착오가 있는 것 같다. 가까운 경찰서로 나와 신분증을 확인 한 뒤 출국금지를 풀어주겠다"고 말했다. 이 말에 속은 박씨는 "2일 집과 가까운 경기도 의정부경찰서로 가겠다"고 말했고 이날 현장을 지키던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경찰 조사 결과 박씨는 2014년 중국인 여자친구를 사귀면서 중국을 방문하다 중국총책을 소개받았다. 이후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박씨가 출국할 당시만 해도 신원이 파악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계속 수사를 벌여 박씨를 용의자로 특정한 상태였다"며 "박씨가 경찰서로 직접 전화를 했길래 인천까지 오라고 하면 눈치를 챌까 봐 '집과 가까운 경찰서로 오라'고 말한 뒤 붙잡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박씨를 상대로 여죄를 추궁하는 한편 중국총책의 신상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

인천=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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